Logo

 

실레마을

실레마을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며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산비알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같이 벌릉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산속에 누워 생각하자면,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새들도 갖가지다. 어떤 놈은 밤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 다리를
반짝 들고는 기름한 꽁지를 회회 두르며,

“삐이죽! 삐이죽!”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얀 새가 “뻥!”하고, 날아와 앉아서는 고개를 까댁까댁 하다가 도로 “뺑!”하고 달아난다. 혹은 나무줄기를 쪼며
돌아다니는 딱따구리도 있고. 그러나 떼를 지어 푸른 가지에서 유희를 하며 지저귀는 꾀꼬리도 몹시 귀엽다.
산골에는 초목의 내음새까지도 특수하다. 더욱이 새로 튼 잎이 한창 퍼드러질 임시에는, 바람에 풍기는 그 향취는 일필로 형용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개운한, 그리고 졸음을 청하는 듯한 그런 나른한 향기다. 일종의 선정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짙은 향기다.

뻐꾸기도 이 내음새에는 민감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한 해만에 뻐꾸기의 울음을 처음 들을 적만치 반가운 일은 없다. 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그 울음을 울어대이면 가뜩이나 한적한 마음이 더욱 늘어지게 보인다.
...................

논밭일에 소를 부릴적이면, 으례히 그 노래를 부른다. 소들도 세련이 되어 주인이 부르는 그 노래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노래대로 좌우로 방향을
변하기도 하고,또는 보조의 속도를 늘이도 줄이고 이렇게 순종한다. 먼 발치에서 소를 몰며 처량히 부르는 그 노래도 좋다.
이것이 모두 산골이 홀로 가질 수 있는 성스러운 음악이다.
산골의 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소리도 좋고, 또는 촐랑촐랑 흘러내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콸콸 쏠려내리는 큰 내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이하 생략)

-원본 김유정 전집 1987

실레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