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김유정기념행사

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2 김유정신인문학상-동화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2.10.04 조회수 2224
[김유정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하늘이만 아는 비밀
강미진
2012년 10월 04일 (목) 강미진

이건 비밀인데,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 때 꼭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마음을 다해서 빌어야 한다는 거야


 

   
 

따사로운 5월의 햇살이 교정에 가득합니다. 살랑살랑 푸른 바람은 교실을 바다처럼 물들입니다. 우수수. 바람은 느티나무 잎사귀도 시원하게 적십니다.

하늘이네 학교에는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학교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머리가 새하얀 교장 선생님보다 느티나무가 몇 백 살은 더 많을 거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고민이 있거나 비밀이 생기면 느티나무를 찾아가 털어놓곤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소원을 빌수록 느티나무는 점점 더 짙은 푸른색을 띠었습니다.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 때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

“규칙?”

“처음 듣는 얘긴걸?”

동네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성철이는 자칭 이야기 수집가이자 오락부장입니다. 성철이가 입만 떼면 최신 게임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을 정말 자기 말대로 수집해 오는 건지 지어낸 건지는 몰라도 성철이의 주머니 속에는 늘 연필과 수첩이 있습니다.

교실 뒤쪽에서 딱지를 치고 있던 민수와 수혁이가 성철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공기놀이를 하던 여자애들도 쪼르르 성철이 옆으로 달려왔습니다. 모두들 느티나무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소원을 비는 데 규칙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봅니다. 어느덧 아이들 대부분이 성철이 앞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늘이만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을 뿐입니다.

“그 규칙이란 게 뭐냐면…”

재미있는 이야기꾼도 되고 싶은 성철이는 조금 뜸을 들입니다. 이야기도 밥처럼 뜸을 들이면 더 재밌어진다는 게 성철이 생각이었습니다.

“이건 절대 비밀인데…”

목소리까지 조용히 낮춥니다. 아이들의 양쪽 귀가 토끼처럼 쫑긋 커집니다. 꿀꺽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립니다. 커다란 눈망울들이 호기심으로 반짝입니다.

“소원을 빌 때는 일단 이렇게 오른손을 심장 위에, 왼손은 느티나무 위에 수평으로 올려놔야 효과가 있대. 문제는 여기서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궁금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성철이는 점점 이야기 할 맛이 생기고 괜스레 뿌듯해집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벗어나 점점 위를 향합니다. 뭔가 불길한 느낌입니다.

“쿵!”

“아얏!”

꿀밤으로 사랑을 전한다는 코봉이 선생님입니다.

“요놈들! 종 친지가 언젠데 여태껏 모여 있지?”

아이들은 모두 쏜살같이 제자리에 가서 앉습니다. 종이 친 줄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들입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듣지 못해 억울하다는 눈빛입니다.

“오늘은 성철이가 대표로 꿀밤을 먹었으니 마치면 아이들한테 골고루 나누어 주도록!”

“하하하!”

아이들은 그새 섭섭한 마음을 모두 잊은 모양입니다. 교실 안은 웃음소리로 흘러넘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말할 때마다 코가 벌름거리고, 콧대가 산봉우리처럼 봉긋 솟았다 해서 코봉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니 아이들은 선생님이 참 좋습니다.

“다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들 있겠지?”

“네!”

내일은 바로 어버이날입니다. 아이들의 구령이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아직 꿀밤을 삼키지 못한 탓에 성철이만 표정이 구겨져 있습니다.

코봉이 선생님은 두 손에 든 부모님께 쓰는 편지를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하얀 종이었습니다.

“5월 8일은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지요.”

아이들 모두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 서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은 그 마음을 담아 평소에 하지 못한 소중한 말들을 편지로 써 보도록!”

아이들 작은 손에는 하얀 종이가 한 장씩 쥐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넓은 종이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한참 망설입니다. 평소에 마음을 담아 글을 써본 적이 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때, 혼자만 꿀밤을 맞은 게 억울한 성철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마음을 담아 쓰는 건 어떻게 써야 하는 건가요?”



아이들 모두 그것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입니다. 이번에는 성철이가 선생님께 꿀밤을 먹이려는 모양입니다.

“성철이가 아주 중요한 질문을 했군요.”

선생님은 성철이에게 잘했다는 눈빛을 보입니다. 칭찬을 듣자 어리둥절해진 성철이가 이내 의기양양해진 자세로 자리에 앉습니다.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여러분 마음 깊숙이 있는 솔직함을 찾아 쓰는 거예요. 솔직함은 꾸밈이나 거짓됨이 없어야 하겠죠? 지금부터 부모님의 모습을 잘 떠올려보면 부모님을 향한 여러분의 ‘진짜 마음’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모두들 머릿속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느라 분주한 눈치입니다.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수민이는 봄 소풍 때 먹었던 김밥이 생각났습니다. 엄마가 새벽부터 보채는 어린 동생을 업고 달래어 가며 싸주신 김밥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먹겠다는 말은커녕 싫어하는 당근을 넣었다고 오히려 투정을 부렸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아이들이 전부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했어요. 다시는 반찬 투정 안 부릴게요.’

수민이의 편지가 보이지 않는 비행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느티나무로 날아갑니다.

수혁이는 며칠 전 비가 내린 날이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그날 일이 있어서 혹시라도 비가 오면 데리러 가지 못한다고 우산을 꼭 챙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산을 안 챙겨서 비를 쫄딱 맞았습니다. 감기에 걸린 수혁이를 밤새 간호하느라 엄마는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을 그냥 흘려들어서 속상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부턴 엄마가 하는 말씀 모두 새길게요.’

수혁이의 편지도 비행기가 되어 느티나무로 날아갑니다.

아이들도 하나둘씩 종이 위에 소중한 마음을 채워나갑니다. 교실 이쪽저쪽에서 나는 연필 소리가 아주 정겹게 들립니다. 이번에는 아이들 모두 깊숙이 있는 진짜 마음을 찾았나 봅니다. 이내 아이들의 편지도 비행기가 되어 느티나무를 향해 날아갑니다. 아이들은 마음을 담아서 날려 보내는 비행기가 꼭 느티나무에게 전해줄 것 같습니다.

“하늘이는 아직 솔직한 마음을 찾지 못했나 보구나! 이 시간 마치기 전까진 꼭 써야 한다.”

선생님은 벌름코인 줄로만 알았더니 눈은 매를 닮았나 봅니다. 교탁 앞에서도 사 분단 맨 뒷줄에 앉은 하늘이의 편지지까지 꿰뚫어보니 말입니다.

아이들 모두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하늘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이는 고개를 반쯤 숙인 상태입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하러 가자고 해도,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도 하늘이는 늘 무표정이거나 대답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하늘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합니다.

“선생님, 하늘이는 아직 솔직한 마음을 찾지 못했나 봐요. 진짜 마음은 꽁꽁 숨어 있어서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겠죠.”

하늘이의 짝꿍인 미소천사 민영이가 하늘이에게 용기를 줍니다. 아이들도 하늘이가 진짜 마음을 찾아 하늘에 날려 보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이는 여전이 무표정입니다.

“민영이 말처럼 진짜 마음은 꽁꽁 숨어있지만 의외로 찾기 쉬울 수도 있단다. 그러니 하늘이는 이번 시간에 다 못쓰면 남아서 두 장을 쓰고 간다는 각오를 하도록!”

생님의 코는 또다시 벌름벌름합니다. 웬일인지 입가엔 의미 모를 미소가 물감처럼 번집니다.

괜히 겁주는 말이겠지만 하늘이는 남아서 두 장을 써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사실 하늘이는 빈 종이를 주고 마음을 담으라는 선생님이 못마땅합니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을 발견한 듯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이들도 못마땅합니다.

부모님은 하늘이가 어릴 적에 헤어지셨습니다. 엄마는 아빠와 마음이 맞지 않아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하늘이는 마음 따위는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맞춰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척 힘이 든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엄마 아빠처럼 마음이 맞지 않게 되면 또다시 예전처럼 아플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는 마음을 담아놓을 수 없었습니다.

‘느티나무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늘이는 아까 성철이가 애들한테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쳇, 말도 안돼.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하늘이는 성철이가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걸 알면서도 그게 사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우리 엄마가 떡볶이 만들어준다고 했어. 우리 집에 같이 갈래?”

앞에 앉은 지우가 편지를 쓰다 말고 짝꿍 예나에게 몰래 속삭입니다. 작은 목소리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하늘이에겐 폭풍우 소리보다 더 세차게 들립니다.

하늘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떡볶이를 해주는 엄마가,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맛있겠다. 그럼 우리 엄마한테 허락받고 가자.”

‘우리 엄마, 우리 엄마’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수록 엄마의 모습이 풍선처럼 자꾸만 커져갑니다.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침밥을 챙겨주고 서둘러 학교에 입고 갈 옷을 빨랫줄에서 걷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옷이 덜 말랐네. 아마 학교에 도착할 때쯤이면 옷이 말라있을 거야.”



하늘이의 엄마는 다른 직장인 엄마와 비교도 안될 만큼 바빴습니다. 세탁을 제때 못해서 다 마르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이는 엄마가 ‘~할 때쯤이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였습니다. 하늘이는 부모님이 헤어진 줄도 모르고 아빠는 언제쯤 집에 오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어린이집 졸업할 때쯤이면, 초등학교 입할 때쯤이면, 2학년이 될 쯤이면’이라고 하셨습니다. 3학년이 되어 엄마에게 사실을 듣고 나서부터는 엄마가 너무 미웠습니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아빠는 더더욱 싫었습니다.

‘엄마는 매일 바쁘기만 해! 엄마는 거짓말쟁이!’

당장이라도 편지를 써야 한다면 하늘이는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그게 선생님이 말하는 진짜 마음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하늘이에게 사실을 말해주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또 얼굴도 보지 못한 아빠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하늘이는 가슴 속 깊이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늘아, 매일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아서 미안해.’

‘우리 아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견뎌줘서 고마워.’

엄마가 매일 해준 말들이, 그냥 가슴 속에 콕 던져버렸던 말들이 하늘이의 가슴에서 슬그머니 떠오릅니다. 깊숙한 그곳에서 엄마의 말들이 빗방울처럼 툭툭 튀어오를 때마다 하늘이의 눈시울이 더욱더 붉어집니다.

“선생님! 하늘이가 울어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이 하늘이를 쳐다봅니다. 늘 조용하기만 한 하늘이의 눈에서 함박눈이 쏟아져 내립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미소를 띠우며 따뜻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가 이제야 진짜 마음을 찾았나 보구나.”

민영이가 얼른 책가방에서 손수건을 찾아 건네어 줍니다. 아이들은 모두 속으로 박수를 쳐 줍니다. 하늘이가 말하지 않아도 하늘이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어느새 하늘이 곁으로 다가온 성철이가 조용히 속삭입니다.

“이건 비밀인데, 느티나무에 소원을 빌 때 꼭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마음을 다해서 빌어야 한다는 거야.”

하늘이가 해맑게 웃습니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마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더 큰 행복이 찾아오는 걸 말입니다.

하늘이의 표정이 느티나무처럼 푸르기만 합니다.

5월, 푸르른 느티나무 위로 아이들의 하얀 ‘진짜 마음’이 훨훨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