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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2 김유정신인문학상-단편소설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2.10.04 조회수 2195
김유정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코엑스 시계는 분침이 없다

최해수
2012년 10월 04일 (목) 최해수
   
 

이틀간 코엑스는 매일 살아오던 이들 말고 다른 이들로 채워질 것이다

코엑스에는 이제 검프가 없다… 피트도, 졸리도 없고, 조지도 없다



15일전/2010년 10월27일 수요일

오바마가 왼손을 든 채 웃고 있다. 늦가을 햇살이 그 얼굴에 사선을 그린다. 주위는 이미 어둠살이 내려앉았기에 얼굴이 도드라진다. 숨어드는 어둠과 달리 검은 얼굴에서는 점점 광채가 일었고, 하얀 이는 초어스름 불빛에 별처럼 반짝거린다. 졸리는 그를 또 쓰다듬고 싶어진다.

“아메리카노와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씩이요.”

바람이 쌀쌀해지자 사람들은 따뜻한 커피를 주문한다. 사내아이가 콧소리를 흥흥거리며, 왼팔에 매어달린 여자아이 머리카락을 비비꼰다. 거스름돈을 내주고 뒤돌아 선 졸리는 혀를 날름하고 그들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커피집 앞은 밀레니엄광장이다. 코엑스지하몰과 삼성전철역을 이어주는 곳이다. 지하광장이지만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릴 수 있게 구멍이 뚫려있다. 광장 크기만큼 큰 구멍이다. 졸리가 일하는 곳에서는 하늘이 안 보인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다 본다. 지금은 햇빛과 낙엽이 같은 색깔로 광장바닥에 떨어지는 늦가을이다. 가끔 초코파이봉지도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사각기둥 사이로 보이는 아스라한 지하철역입구, 지하철역내 불빛을 휘몰아오듯 경쾌한 걸음걸이의 한 사내가 어스름한 광장에 들어선다. 검프다. 4와 5 중간이다. 천천히 오던 검프는 졸리를 힐끗 본다. 졸리가 어른거렸던 눈동자를 지우고, 다시 무심한 눈동자로 가던 길을 힘차게 간다. 우산을 불끈 쥔 오른손을 흔들며 오바마 앞을 지나간다. 검프의 힘찬 걸음에 오바마가 휘청하는 듯 했다. 코엑스 밀레니엄광장에는 나흘 전부터 G20정상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오바마만 전신브로마이드로 홀로 서있고, 그의 해맑은 미소는 졸리를 괜히 달뜨게 만들고 있다. 그 오바마가 보름 후 이곳에 온다. 졸리에게 다른 정상들은 그저 오바마를 따라다니는 각양각색의 푸들 같기만 할 뿐이다. 졸리의 커피집은 쉬는 날이 없었다. 밀레니엄광장에 사람들이 드나들면 언제든 커피를 팔아야했다. 명절에도 에스프레소머신 스팀에 손이 데일까 조심해야했다. 보름 후, 오바마는 이틀 동안이나 졸리를 해방시켜줄 것이다. 커피집을 열고 싶어도 열수 없다. 커피집 뿐만 아니라 코엑스몰 모든 매장은 조용히 문을 닫아야 한다. 이틀 동안 코엑스는 매일 살아오던 이들 말고 다른 이들로 채워질 것이다.

불빛이 햇살을 밀어낸다. 햇살이 오바마 머리 위를 지나 사라진다. 저물어가는 찬 대기가 밀레니엄광장에 가라앉는다. 오고가는 사람들도 잠시 뜸하다. 곧 오바마가 안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쏟아져 나갈 것이다.

“언니, 나 화장시일.”

졸리는 건너편 켄터키프라이드치킨매장의 출입문만한 공간에서 일한다. 냉장고, 에스프레소머신, 개수대, 얼음박스, 계산대, 벽에 붙은 각종수납장들에게 졸리는 엉덩이를 보이며, 주문창 밑에 붙은 라면박스만한 크기의 엘리스구멍을 열고 기어나간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매장 옆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며칠 전까지 퉁퉁한 켄터키영감님 엉덩이를 만졌으나 지금은 오바마가 대신한다. 더듬는 손끝 감촉이 반질거린다. 졸리는 커피집에 기어들어와 오바마를 본다. 반질거렸던 손끝 여운이 그 웃음에 살아 꼼지락거린다.

꽃집아줌마는 졸리가 언니라 부를 뿐, 졸리 나이 두 배다. 아줌마는 손으로만 이야기한다. 매장 4분의 3은 꽃집이고 그 나머지 조그마한 공간이 졸리와 살을 붙이고 있는 다. 75℃가 가장 맛있는 커피 온도라는데, 졸리는 언제나 65℃이하인 커피를 마신다. 지금도 손님에게 뽑아주고 남은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다. 7과 8 중간이다. 지하광장에 무지개섬광이 스치듯 번뜩인다. 건너편 레스토랑 <라그릴리아> 음악소리를 뚫고, 마이클 잭슨의 빠른 비트 음이 내리꽂힌다. 지상광장 피아노음악분수는 마이클 잭슨 에 맞춰 빛과 물로 현란하게 춤추고 있다. 졸리도 고개를 까딱이며 발로 바닥을 긁어댄다.

“어컵오브커피.”

조지가 늦었다. 커피집 분침 없는 시계시침이 8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기름을 바르고 2대8 가르마를 탄 이티라고 졸리는 늘 생각한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낡고 검은 반코트를 입었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오그린다. 야행성이라 핼쑥한 얼굴에 검은 뿔테안경을 썼다. 입술 양 끝자락이 침이 마른 것처럼 희끄무레하다. 말하거나 고개를 돌릴 때, 왼쪽어깨에서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한다.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어폰이 빠져있어도 삐딱하게 쳐다보며 말한다. 졸리는 그를 이티라 하지 않고, 조지라 불러주었다. 졸리는 조지 클루니를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대리기사 필요하냐고 물어봤지.”

졸리가 오바마와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었더니, 조지가 한 대답이다. 밀레니엄광장에 마련해 놓은 ‘G20세계정상들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다. 조지로서는 가장 절실한 생존권 문제를 오바마에게 물어 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조지가 커피 집의 한결같은 졸리를 매일 보듯, 졸리도 한결같은 조지를 매일 본다. 조지는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운전임을 알았다고, 졸리에게 웃으며 말했었다. 그 말은 먼지에 말려 인간들 발길에 채이며 나뒹굴었고, 입가 웃음은 그늘진 주름으로 그어졌다.

조지는 커피를 물마시듯 한다. 조지는 졸리가 우유와 시럽을 듬뿍 넣어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대리기사일과를 시작한다. 밤에 일하는 동안 그가 마시는 자판기커피는 두 손으로 꼽는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몸에 해롭다한들, 춥고 배고플 때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한잔을 무엇이 대신해 주겠는가. 뜨거운 커피를 조지 손에 쥐어주고 졸리는 식은 커피를 홀짝인다. 조지는 7과 8 중간쯤에 졸리가 준 커피를 받아든다. 꾸부정한 뒷모습으로 어기적거리며 코엑스몰로 사라진다.



“엇, 뜨거.”

조지는 졸리가 가득 담아준 뜨거운 커피를 손에 든다. 테이크아웃 컵 좁은 구멍으로 커피가 넘친다. ‘돈 벌어 허리우드 간다는 아이가 저러고 있다. 키만 겅중 하고 아직도 주근깨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으나 풀어헤치나 말괄량이삐삐.’라고 조지는 늘상 중얼댄다. 광장에 박혀있는 열두 개 사각기둥 모두가 영화포스터로 도배되어있다. 며칠 후 상영되는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인 영화다. 포스터는 졸리 얼굴로, 졸리 얼굴은 붉고 두툼한 입술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입술이 졸리 반도 못 미치는 아이가 졸리란다. 삐삐 졸리는 동네반장이다. 코엑스 붙박이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없다. 코엑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누구나, 졸리 눈길을 피할 수 없다. 마치 코엑스에서 살아가려면, 그녀에게 과거를 보따리 풀듯이 풀어야 가능한 일인 듯이…. 그리고 그녀에게 허리우드스타 이름을 별칭으로 부여받는다.

조지는 두 졸리를 뒤로 한다. 삐삐 졸리가 준 커피를 손에 들고, 코엑스몰 회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등에 ‘POLICE’라 크게 쓰여 진 점퍼 입은 사내들이 두세 명씩 짝지어 돌아다닌다. 각자 손마다 ‘찌직’거리는 무전기가 들려있다. 그 수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그들 존재는 불거졌다. 그들은 흑백이지만 주위의 빛과 색을 압도한다. 한 조만 있어도 많은 사람들은 배경이 되고 그들 움직임만이 느껴진다.

조지는 파스쿠치 커피숍, 호날두 사진이 붙어있는 아디다스, 털북숭이 베컴의 나이키 매장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의 코엑스로 올라간다. 좌측으로 틀어 코엑스전시장 A2입구가 마주 보이는 휴게공간으로 간다. 그 곳에는 등 받침이 없는, 세 개가 한 쌍을 이루는 의자 열다섯 쌍이 있고, 공중전화 부스가 세 개 있다.



“지20이 아니라 쥐20이라니까, 이 사람아. 주둥이는 삐뚤어도 발음은 똑바로 해야지.”

대리기사 일곱 명이 빙 둘러 한 무리지어 앉았고, 두 명씩 두 무리가 각기 떨어져 수군댄다. 젊은 여자 둘이서 조잘거리고, 양복 입은 눈 찢어진 사내가 팸플릿 같은 책자를 보고 있다. 코엑스 구석구석에 의자가 있다. 날이 저물면 그 의자마다 중년이나 초로의 사내들이 손바닥 안 휴대폰단말기를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이들은 동료의 사소한 말꼬리부터 잡아가며 대리기사의 하루를 연다.

하여간 저 친구는 열심이야. 뭐가? 저기 저 젊은 청소부 말이야. 휴대폰으로 드라마 보는 친구. 이 사람은? 처음 보나? TV드라마를 저렇게 열심히 보는 친구는 처음 봤어. 그것도 사내 녀석이. 듣겠다. 못 들어, 쟤 말도 못하고 귀도 안 들려. 그런데 왜 이어폰은 끼고 있나? 가서 물어봐 왜 끼고 있는지.

젊은 청소부 피트는 청소 중에 저 쪽 구석진 곳 계단에 앉아 쉰다. DMB폰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청소용역모를 쓰고 유니폼을 입은 허름한 차림새에도 갸름한 얼굴에 굴곡이 뚜렷하다. 졸리가 피트라 부를 만했다. 언제부터인가 피트가 조지 눈에 들어왔다. 피트는 이맘때쯤 근처에서 청소를 하거나 쉬거나 한다. 그도 졸리처럼 코엑스의 한부분이다. 졸리는 피트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쉬는 날에도 동료 대신 나와서 일한다고 했다. 남의 약점을 뜯어먹는 동료들이란다. 피트에게 TV드라마는 그의 전부라고 졸리는 말했다. 다른 소리는 안 듣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소리만 듣는다고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집게와 장갑 낀 손으로 용도별로 분류할 때, 그는 표정이 없다. 계단 구석진 곳에서 DMB폰이 켜지고, 그 여린 빛이 얼굴을 어루만질 때 비로소 생기가 돈다. 피트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과는 눈을 마주보지 않는다고 졸리는 말했다. 그의 생존권 문제라고…. 일곱 살 때, 엄마라는 여자가 목을 졸랐고,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경우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고, 졸리는 농담하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8과 9 중간이다. 코엑스 시계는 분침이 없다. 검프가 우산이 들린 오른팔을 힘차게 흔들며 걸어온다. 공중전화 쪽 의자에 앉는다. 손에 들었던 접이식 버버리 색 우산을 옆에 펼친다.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허리를 펴 숨을 고른다. 깡마른 몸에 반 넘게 탈색된 긴 생머리를 하고 얼굴은 허옇다. 눈썹은 팔자를 그렸고 크지 않은 눈에 무테안경을 끼고 있다. 코는 오뚝하고 얇은 입술은 꼭 다물고 있다. 동그라니 뜬 눈은 정면만을 응시한다. 그 표정은 미소를 띤 것 같기도 하고, 근엄해 보이기도 하고,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대리기사들도 여전히 적절한 해석을 찾고 있는 중이다. 파계한 스님과 성자가 된 청소부의 중간쯤이라고 누가 말하지만, 모두들 눈만 껌뻑거린다.

저 우산은 왜 펴는지 알아? 아니. 자넨 아나? 자기별과 교신을 하는 거야. 그의 별이 어딘데. 저기 있어. 어디? 저어기. 이 친구는 꼭 주둥이에 밥을 넣어줘야 밥인가 보다 해.

검프는 5분정도 쉰다. 왼손에 들었던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펼친다. 어른주먹이 왔다 갔다 할 만큼 큰 구멍이 뚫린, 코엑스몰에서만 파는 던킨 슈퍼도넛이다. 도넛을 꺼내 왼손에 든다.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오른손에 든다. 흡족한 표정으로 도넛을 쳐다본다. 한 입 베어 문다. 오물오물 씹는다. 요구르트를 한 번 ‘쪼옥’ 빤다. 끝으로 검프는 시계바늘처럼 생긴 얇고 긴 쇠바늘을 지갑에서 꺼내, 치아를 정리한다. 그렇게 찬찬히, 검프는 의식을 거행한다.



검프는 누가 말을 걸지도 않지만, 누구와도 말을 하지도 않는다. 궁금증을 못 참는, 허우대 멀쩡한 친구도 그에게는 말을 붙여보지 못했다. 모두 그를 바라만 본다. 그렇게 자연스런 존재가 됐다. 검프는 언제부터인가 코엑스몰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활보하는 그가 눈에 띄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언제나 그 시간, 그곳에, 그가 있다. 4와 5 중간에 지하철삼성역으로부터 힘차게 걸어온다. 졸리의 시선을 확인한다. 우산을 불끈 쥔 오른손을 흔들며 밀레니엄광장을 통과한다. 코엑스몰 회전문을 통해 들어간다. 그리고 코엑스몰을 하루 3시간 동안 세 번 돈다.

졸리와는 유일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조지는 그들의 의사소통에 대해 좀 복잡한 느낌을 받고 있다. 졸리는 피트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듯, 검프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조지는 검프가 코엑스몰을 도는 방식은 일정하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 대 별로 검프가 보이는 장소가 조금씩 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리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고 최근에 말했다. 서른세 번을 각기 다른 코스로 해서, 11일마다 되풀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세 번을 활보한 후에, 졸리가 싸준 슈퍼도넛과 요구르트, 빨대가 든 봉지를 왼손에 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코엑스 전시장 A2입구 건너편 후미진 의자에 앉는다. 검프는 의식을 거행한다.



10일전/11월1일 월요일

“아가씨, 커피 석 잔. 그냥 다방커피로 줘.”

“각 구역별로 검색대설치 이상 유무를 보고하라.”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시민들 통행이 조금 뜸합니다. 구역별로 대테러작전을 겸한, 검색대 설치작전이 순조롭습니다.”

졸리는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었다. 조지 이어폰과는 격이 달라 보인다. 그중 젊은 한 명은 왼팔을 들어, 소매 깃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계속 중얼거린다. 세 명 모두 짙은 감색 싱글양복을 입었다. 이들은 짧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2대8 가르마를 질서정연하게 탔다. 이어폰은 목안에서 흰 와이셔츠 깃 사이로 삐져나와 귓바퀴를 돌아 귀에 꽂혀있다. 이들과 이어폰은, 졸리에게 저 콘크리트 기둥보다 더 둔탁하게 다가왔다. 조지 이어폰은 코엑스에서 흘러나온 한 가닥일 뿐이지만 이들 이어폰은 코엑스를 친친 감았다.

“긴급 상황입니다. 5구역 검색대에서 한 시민과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검색대를 설치하기 위해 잠시 통행을 통제했지만, 막무가내로 지나가겠답니다.”

“뭔 놈이야, 검문해봐.”

“목적지가 불분명하고, 이유도 없고, 무조건 지나가야한다는 겁니다. 손에 접는 우산 하나만 달랑 들려 있습니다. 일단 조회는 요청했습니다.”

졸리는 동그란 눈으로 커피만 젓는다.

“아가씨, 커피 안주고 뭐해?”

“타깃삼아 연습 한 번 해 볼까요? 연행할까요?”

세 명 모두 뻣뻣하게 서서 커피를 똑같이 후루룩 거린다. 조금 지난 후, 덜 뻣뻣한 자세의 사람이 말한다.

“뭐? 그래? 빨갱이색귀구만. 일단은 놔주고, 요주의 인물로 등재해. 그리고 감시 붙여.”



7일전/11월4일 목요일

비가 지상에서 지하로 떨어진다. 하루 내내 떨어진다. 바람도 휘몰아치고 공기도 차디차다. 오바마는 여전히 왼손을 든 채 웃고 있겠지만, 비닐로 덮여있어 윤곽만 보인다. 비가 비닐윤곽을 때린다. 광장블록을 때린다. 빗방울이 튀긴다. 차고 습한 공기에 섞인 물비린내가 광장을 떠돈다. 졸리는 눈을 감고 코를 열어 주문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를 빨아들인다. 비리고 찬 기운에 온 몸 세포가 꿈틀거린다. 지상을 떠받치는 사각기둥사이로, 졸리는 광장에 떨어지는 비를 오래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물끄러미 비를 보고 있자면, 비 떨어지는 광장을 피해 커피집 앞 통로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졸리 시야도 가리고, 커피 주문도 한다. 부산스럽다.

비가 휘몰아쳐 커피집 엘리스구멍에까지 튄다. 졸리가 피트에게 주려고 밖에 놓아둔 종이박스가 젖는다. 사탕을 비닐봉지에 싸서 같이 두었는데 비가 들이친다. 비 오면 피트는 청소가 늦어진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쓰레기도 흩어져 거치적거리는 일이 많아진다.



검프다. 4와 5 중간이다. 오른손에 검고 긴 박쥐우산이 쥐어있다. 검프는 비 떨어지는 광장을 피해 기둥 안쪽으로 걸어온다. 졸리가 그 옆모습을 힐끗 본다. 검프 얼굴이 파리하고 딱딱하다. 얼굴은 며칠 전부터 굳어있다. 강도가 점점 더 세어진다. 표정이 바뀌면서 우산도 긴 박쥐우산으로 바뀌었다. 졸리를 대하는 눈빛도 밝지가 않다. 검프는 더 이상 당당하게 걷지 않는다. 철거덕거리며 걷는다. 더욱이 오늘은 다리에 비를 잔뜩 머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질질 끌듯이 걸어 코엑스몰 안쪽으로 사라진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졸리는 뒤돌아서서, 긴 한숨을 내쉰다.


 

   
 


졸리는 바퀴벌레를 발로 밟아 짓이긴다. 물컹거리는 살과 내장이 신을 통해 발바닥을 간질인다. 다리를 훑으며 꼬리뼈를 타고 등골로 거슬러 오른다. 사내아이들 소변보고 진저리치듯, 서서 진저리치고 있는데, 창문을 틱틱…, 이 느낌을 졸리는 안다. 조지다. 7과 8 중간이다. 이렇게 비가 너덜거리면서 내리는데 운전을 어떻게 하려나. 오늘은 좀 더 뜨거운 커피를 주어야겠다고 졸리는 생각한다. 돌아서니, 조지 몰골이 역시나 비 맞은 이티다. 아내와 아이들이 멀쩡한 우산 다 가져가고 두어 개 살이 부러진 우산 쓰고 오니 저러지 싶어, 졸리는 혀를 찬다.

졸리는 조지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요사이 아내의 따뜻한 품에 안겨봤어요? 딸아이가 ‘아빠 사랑해요’라며 안겨 와요?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 해고된 후, 바로 대리기사를 시작했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려고, 밤이슬을 맞으며 돌아다녔지만 이젠 아예 본 직업으로 굳어버린 것 같다. 조지가 대리기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의 아내는 보험설계사를 했다. 순식간에 조지 서열은 키우는 해피보다도 밀려났다. 조지는 집에서 돈 벌어주는 기계가 됐다. 돈만 벌어다주는 기계인간, 아침에 가족들이 집을 나갈 때 들어가고, 가족들이 들어올 때 나오는 그림자인간, 조지에게 우산을 주면 누가 또 가져가려나. ‘그래도 아내가 있는 가정이 따뜻해요.’ 졸리 이마에 주름이 두 개 그어진다.



“엇 뜨거.”

조지는 졸리가 가득 담아준, 뜨거운 커피를 오른손에 든다. 졸리가 준 우산은 왼손에 있다. 코엑스몰 회전문을 왼쪽어깨로 돌린다. 등에 ‘POLICE’라고 써 붙인 인간들이, 이상한 탈 것을 타고 돌아다닌다. 커다란 바퀴 두 개에 긴 T형 손잡이만 달려있다. 금방 쓰러질 듯하지만, 윙윙거리며 잘도 돌아다닌다. 어릴 적 폴짝거리며 타고 다니던 ‘스카이콩콩’이 떠오른다. 조지는 웃음을 실실 흘린다.

사흘 전부터 공항에서나 보던 검색대가, 코엑스전시장으로 연결되는 모든 통로에 설치됐다. 코엑스몰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설치된 검색대는 통로가 두 개다. 크기와 생김새가 여러 종류인 폴리스들이 진을 쳤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 같다. 조지는 떡이 진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남자가 아닌 폴리스가 검색하는 쪽으로 간다. 조지는 단지 남자가 몸을 더듬는 것이 싫을 뿐이다. 머리 냄새를 맡고 후회를 하면서, 조지는 코를 벌름거린다. 검색봉이 가슴을 스치고 지날 때 간지럽다. 사타구니 사이를 지날 때, 조지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이 오그라든다. 검색대를 설치하자, 사람들은 검색대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대리기사들도 대부분 검색대 바깥에서 대기한다. 그 와중에도 전시장 A2앞 휴게소에서 꿋꿋이 버티는 대리기사들이 있다.



“세그웨이야, 세·그·웨·이.”

짧은 머리에 기름 발라 머리털을 한 올 한 올 치켜세운 허우대 멀쩡한, 저 친구는 궁금하면 못 참는다. 궁금증을 풀고 나면, 떠든다. 당신 타 봤나. 타 봤지. 그냥 서서 말에게 하듯, 발로 툭 치고, 가자 그러면 가고, 서라 그러면 서. 타본 사람 없으니 알게 뭐람. 그렇다고 무전기를 ‘찌직’거리며 다니는 폴리스한테, 깝죽대며 물어보기도 그렇고. 요새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코엑스 주위는 물론이고 강남에 주당들이 사라졌어. 아 그건, 정부미가 방출이 안 돼서 그래. 그들은 지금 비상대기 중이잖아. 그리고 이럴 땐 몸 사려야지. 빨리 쥐20행사가 끝나야지 우리는 굶어 죽겠고만. 그러엄, 정부미들 접대 없으면 술집은 문 닫고, 우리는 손가락 빨아야지.

순간 조용해진다. 검프가 박쥐우산을 쥔 오른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얼굴도 걸음걸이도 딱딱하다. 의자에 앉는다. 슈퍼도넛을 든다. 한 입 베어 문다. 모든 사물은 정지되고, 검프 행위만 이루어진다. 바람이 없는데도 옆에 펼쳐놓은 검고 큰 박쥐우산이 펄렁인다. 검색대가 세워진 다음날부터 표정과 함께 바뀐 우산이다. 검고 큰 우산만큼이나 그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리기사는 대리기사대로, 폴리스는 폴리스대로, 검프를 관찰한다. 이미 폴리스도 검프 존재를 인식했지만, 그들에게 사람은 끝없이 의심해야만하는 대상이다.



검색대가 설치된 다음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검프와 박쥐우산은 폴리스의 관심대상이 됐고, 실험대상이 됐다. 검색대를 통과한 검프를 세워두고, 폴리스는 박쥐우산을 펼쳤다. 하나하나 해체라도 하듯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검프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우대 멀쩡한 친구가 지나가다 보았다. 검프는 마치 자기 아내가 희롱당하는 장면을 보듯, 분노와 수치심이 얼굴과 몸에 흘러넘쳤고, 주먹 쥔 손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너스레 떠는 것 같았지만, 뒤이어 검프가 발이 땅에 붙은 듯 걸어와 주저앉았다. 넋이 빠진 모습에, 모두 침만 삼켰다. 이 후로 검프가 지나가는 곳은 침묵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대리기사들이 소곤거린다. 저 친구 이틀 동안 어떻게 하지? 코엑스를 막아버리면 그는 어디로 가지? 왜 매일 돌아야 하지? 언젠가 코엑스몰에서 화재가 났었어. 지상까지 번지지는 않고 지하에서 진압이 되었지만 난리가 났었지. ‘반디앤루니스’쪽 식당가 입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왜, 맞은편에 ‘버거킹’이 있잖아. 물론 ‘스타벅스’ 내부만 좀 불에 탔지만. 지하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봐. 그런데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더라고. 말이 돼, 그 아수라장에 사람이 안 다친 것이? 하여간 그놈들이 인명피해가 없었다는데, 설령 당신이 그 때 밟혀죽었다 해도 믿을 수밖에 더 있나? 됐어, 계속 얘기해봐. 일단은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소방관들만 남았지, 소화액은 범벅이 되고 바닥이 철벅거렸어, 연기도 다 빠지고, 소방관들이 겨우 한숨 쉬고 있는데, 저 쪽에서 누가 오는 거야. ‘반디앤루니스’에서 ‘버거킹’쪽으로 씩씩거리면서 오는 거야. 그리고는 옆도 안 돌아보고, 철벅거리는 바닥도 아랑곳없이 착착 지나가더라는 거야. 통제테이프를 쳐놓았지만 소용없었어. 물론 검프였지. 이유가 꼭 필요한가? 인간아 왜 사냐? 물으면 대답 할 수 있어? 지구가 도는데 이유가 있어? 검프는 반드시 4와 5 중간에 코엑스에 나와 활보를 하고, 8과 9 중간에 우산을 펼쳐놓고, 슈퍼도넛과 요구르트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검프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코엑스에서 활보하고 도넛을 먹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검프를 보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됐다.

졸리도, 피트도 이틀을 빼앗기게 생겼다. 그들에게 코엑스에서 살아온 매일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해온 일상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해온 일이었지만, 몸에 붙어버렸다. 지금도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몸에 붙은 것들을 이틀 동안 떼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리 부르셨어요. 라고, 굽실거리면서 일하면 되고.’ 조지는 중얼거린다.



검프는 코엑스에서 치르는 의식을 멈출 수 없고, 이건 그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야. 우리처럼 몇 번은 양보해도 되는 것이 아닌 양보할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생존권이야. 검프만의 생존권. 그래서 그 생존권은 존중돼야 해. 우리들 헤픈 생존권하고 틀려. 갑자기 생존권이 새털처럼 휘휘 날아오르기도 하고, 열두 기둥처럼 붙박여 있기도 했다. 검프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일을 계획하고 있어. 그게 뭔데? 검프는 자기 행동이 방해받는다는 것을 알고부터, 밀레니엄광장에 있는 정상들을 매일 노려보고 있어. 삼일 전부터 그들에게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어. 난 그 내용을 알고 있지만, 이야기 할 수 없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야. 허우대 멀쩡한 친구가 빳빳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주로 이야기 했다.

검프는 저들에 맞서 저항할 수 있어. 상대가 아무리 거대한 힘을 지녔어도 최소한 흠집은 낼 수 있잖아, 물론 검프 몸과 정신은 망가지겠지만. 검프가 자기소멸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어. 상대는 부딪쳐도 계속 가야만 하는 집단이야. 그들은 사람들이 태엽을 감아놓은 기계야. 태엽은 사람들이 감았지만, 그 후론 자기 멋대로지. 태엽감긴 탱크가 철거덕거리며 오는데, 같이 죽자고 대가리 디밀어봐, 그들에겐 따뜻한 심장이 없어. 그냥 밀고 지나가면 끝이야. 그들은 자기소멸을 몰라. 소멸은 공멸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어. 그래서 검프는 저항보다는 그나마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소멸을 택할 수도 있다는 거야. 저들은 알까? 당연히 알지. 저들도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우리 주위에도 최근 들어 얼굴 보이는 이들은 대리기사가 아냐. 모두 동료들 얼굴을 한 번씩 본다. 옆자리에 팸플릿을 보고 있던 눈 찢어진 사내도, 한 번 힐긋거린다.

수군대는 말들은 허공에 떠다니고, 조지가 비몽사몽이다. 동료들 달싹거리는 입술만 보인다. 떠돌던 말들은 조지 머리에 들락거린다. 조지의 퀭한 눈이 몽롱하다.



3일전/11월8일 월요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와 변화에 대한 희망을 얼굴로 보여주었던 분입니다. 그는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은 그가 지닌 가치가 뭔지도 모른 채 희망을 품었습니다. 취임연설에서 지구촌과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슬람세계에, 미국은 상호이익과 상호존중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의 농장이 잘 되고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하며 굶주린 몸과 허기진 마음이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여러분과 협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

2년 정도 흐른 이 시점에서, 미국과 미국인을 대표하는 분으로서, 앞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범 지구촌의 평화와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 미국이 우호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검프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밀레니엄광장에서 사람들이 G20세계정상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TV뉴스에서 취재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그는 마치 써놓은 글을 읽어내려 가듯 단숨에 말하고, 다시 코엑스몰 안쪽으로 쌩하니 가버렸다.

조지는 7과 8 중간쯤에 졸리의 커피집 앞에서 보았다. 커피집 앞 기둥에 붙어있는 영화포스터의 졸리 입술에, 왼쪽 어깨를 기대고 들었다. 점퍼차림 검프가 반백머리를 쓸어 올리며, 거침없이 내뱉은 말은 주위에 넓게 퍼졌다. 조지는 그가 떠나고도 한참 그러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님 사랑해요. 저희나라에 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얘, 너도 한마디 해.”

“너무 너무 멋져요. 오빠아… 사랑해요.”

이십대 젊은 커플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모양을 그리며 폴짝거린다.

조지가 뒤로 돌아서니, 졸리가 빤히 쳐다본다.

“졸리, 들었지?”

조지는 높은 톤의 말로 졸리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졸리는 눈길을 거두고 커피콩을 갈기 시작한다.



취재가 끝날 즈음에 개신교회 사람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G20세계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와 아울러 기독교 복음의 세계화에 대한 기도’를 하고 갔다.



알아? 아까 피아노 광장에서 쥐20에 반대하는 분신이 있었잖아. 그래? 어떻게 됐나? 불붙이려 하는데 잡아갔어. 왜들 얌전히 안 죽고 그러지? 적어도 자기 개인을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잖아.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잖아. 이봐, 모르면 콜 잡고 가서 대리운전이나 해.

조지는 동료들 수다를 멍하니 듣는다. 분신사건도 좀 전 검프 모습도 조지에게 자꾸 눌어붙는다. 조지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옆 의자에, 눈 찢어진 사내가 팸플릿을 보고 있다. 피트는 여전히 DMB폰을 들여다본다. 다른 때보다 더 꼼짝 않고 오래도록 그러고 있다.

검프가 걸어와 철퍼덕하니 의자에 주저앉는다. 침묵이 흐른다. 검프의 허연 얼굴은 벌게져 있다. 그는 정적 속에서 슈퍼도넛을 우적우적 씹는다. 요구르트를 신경질적으로 빤다. 검고 큰 박쥐우산은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대리기사들은 콜을 잡든지 담배를 피우든지 이리저리 사라진다. 검프는 의식을 마치고, 철거덕거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좀 전, 졸리가 커피내리면서 조지에게 독백처럼 이야기했다.

검프는 국어선생님이었다. 사립학교재단의 전횡에 맞서다 해직이 됐다. 교사로 발령받고 5년이 지난 후, 1987년 6월에 일방적으로 해직됐다. 검프는 5년 가까이 항거를 했고, 연행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투옥은 검프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해묵었다고 생각했던 이데올로기 굴레가 검프에게 씌워진 것이다. 당시 검프에게 아홉 살 난 사내아이와 좀 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검프의 아내는 사내아이와 같이 죽으려 했으나, 아이에게 상처만 남기고 혼자 죽었다.



이틀 전/11월9일 화요일

‘Seventy Five Degrees’커피집 유리창이 닫혀있고, ‘Closed’라는 표식만 달랑댄다. 조지는 그 앞에 선다. 10분이 지난다. 꽃 집 아줌마는 손을 휘 젓기만 할 뿐이다. 다시 10분이 지난다. 졸리를 본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다시 10분이 지난다. 조지는 코엑스몰 검색대를 거쳐 1층 전시장 A2앞 휴게공간으로 간다.

피트가 보이지 않는다. 검프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지는 오늘따라 코엑스의 거대한 벽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뭘 해야 하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조지는 오늘, 대리운전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릴 내쫓고 뭘 하자는 거야?”



하루 전/11월10일 수요일

이른 저녁부터 코엑스는 통제되기 시작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해졌다. 조지는 ‘Closed’가 달랑대는 커피집 앞 밀레니엄광장을 어슬렁거린다. 조지는 폴리스에게 쫓겨난다. 지상광장으로 올라간다. 피아노분수대 옆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다. 벤치에 앉는다. 커피 맛을 느낄 수 없다. 졸리가 ‘Seventy Five Degrees’에 있는 한, 조지는 졸리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대리기사일과를 시작했다. 조지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조지는 졸리 커피가 일깨워주지 않는 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없다. 대리기사도 할 수가 없다. 졸리 커피는 그에게 일상의 빛과 색을 입혀주었다. 조지는 그림자인간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 그림자인간에게 피아노건반 불빛과 분수, 마이클 잭슨의 비트 음은 곧 혼돈속의 절망이다.



그날/11월11일 목요일

G20세계정상회의는 코엑스전시장에서 예정대로 진행됐다. 코엑스와 주변은 이틀 동안 사람들이 통제되고, 격리됐다. 이틀 내내 비가 그 주위를 을씨년스럽게도 흩뿌렸다.



코엑스에는 이제 검프가 없다.

피트도, 졸리도 없고, 조지도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