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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7회 김유정 소설문학상 수상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1.09.29 조회수 2655
> 뉴스 > 문화 > 문학/출판 | 김유정 문학상
[제17회 김유정 소설문학상 수상작] 구멍 - 홍이레
엄마가 몰래 왔다가 그냥 갈까봐서 그런 것이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다니. 그것은 분명 구멍이었다.
엄마는 쭉 뻗은 손가락 끝을 따라 하늘을 계속 보고 있었다.
별은 빛이 아니라 우주의 구멍이었다.
2011년 09월 29일 (목) 김세미
   
▲ 삽화:조영길

파티는 끝났다. 나는 슬며시 금술이 달랑거리는 고깔모자를 벗어서 등 뒤로 감추었다. 아무도 축하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선물도 없었다. 열네 번째 생일 파티는 건너 뛸 수 없어서 마지못해 찍은 점 같은 것이었다. 서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여덟 개의 눈은 저마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끓인 소고기 미역국은 밍밍했다. 계란찜은 너무 짰고 콩나물무침은 달았다. 아버지의 권유로 마지못해 말린 오징어 다리 같은 갈비를 질겅질겅 씹었다. 외할머니가 손등으로 눈을 씻어내며 말했다.

“인자 눈도 침침하고 음석 간도 제대로 못 보고.”

맞다. 외할머니는 어느 날, 폭삭 늙어 버렸다. 미각마저 노화되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갑자기 늙고 밉고 서러워졌다.

“내일부터 제가 밥을 할랍니다. 장모님.”

아버지가 말했다. 외할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고모는 흠 없이 아름다운 손으로 케이크 접시를 우아하게 받쳐 들고 크림을 걷어내던 동작을 멈추었다.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아침엔 간단히 빵이나 시리얼 먹자. 저녁밥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아이고, 빵쪼가리 묵고 어치케 일을 해.”

외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합죽한 입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하시죠, 장모님. 고모는 슈퍼에 들르기가 번거로우니까 미희가 사라.”

“예.”

외할머니는 시든 무화과 같이 조글조글한 턱을 부르르 떨고 나고 수박씨를 내뱉듯이 퉤, 내뱉었다.

“망할 년.”

외할머니의 욕설에 아버지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큰 기침을 했다. 고모는 포크로 케이크에 박힌 체리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잇새에 낀 고기를 손톱으로 긁는 시늉을 했다. 입술에 힘을 주었는데도 참을성 없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다녀올랍니다. 미희야, 대문 활짝 열어두어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더 낮고 음울했다. 아버지는 대머리에 모자를 꾹꾹 눌러쓰고 공사판 야간 근무를 하러 나갔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가는 아버지의 꾸부정한 팔자걸음이 모퉁이로 사라졌다.

고모는 동그랗고 낮은 바퀴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집안에서는 바퀴의자가 고모의 다리였다. 고모는 나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외할머니는 싱크대에서 어제 마시다 숨겨둔 소주병을 꺼냈다.

고모가 준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 학생용 브래지어였다. 내 가슴엔 젖멍울이 제법 커져 있었다. 티셔츠를 벗고 브래지어를 가슴에 갖다 대보았다.

땡땡하게 부어올라 잔뜩 골이 나 있던 젖멍울, 누군가 지나가면서 슬쩍 건드리기라도 하면 새파랗게 날이 서던 젖멍울의 통증을 말했을 때 엄마는 곧 예쁜 브래지어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어깨끈을 올리고 등 뒤로 팔을 돌려 후크를 채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 후크는 두 개였는데 하나만 채워지거나 엇갈려 채워졌다. 나는 문득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부끄러움과 간지러움과 불편함을 약간의 투정이 섞인 콧소리로 징징거리며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브래지어 후크가 채워지길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풀고 채우기를 반복하다 먼저 후크를 채우고 등 뒤로 돌린 후 어깨끈을 올리는 간단한 방법을 터득했다. 아무리 쉽고 간단한 것이라도 누군가의 애정 어린 도움을 받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흰색에 가까운 연노랑 브래지어를 한 거울속의 나는 다른 여자애처럼 보였다. 브래지어를 처음 찬 가슴이 답답했다. 적응해야했다. 아직까지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여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담임은 조는 여학생들의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 잠을 깨우곤 했다. 여학생들은 기겁을 했고 남학생들은 낄낄거렸다. 자습시간에 숙어를 외우다 졸았을 때 내 등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담임의 손가락은 허공에 헛디딘 발처럼 당황했다. 그때 알았다. 때로는 가슴이 몸 전체라는 것을. 나는 브래지어만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옷을 입고 있지 않은 거였다. 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담임은 몸을 숙여 은근한 목소리로 종례 후 따로 남으라고 했다. 담임의 입에서 사골을 끓일 때 우러나는 누린내가 났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는 책상의 오래된 낙서들을 분석하며 담임을 기다렸다.

담임은 책상에 걸터앉아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거북하고 어색해서 누군가 책상에 칼로 새겨 놓은 ‘필생’ 이라는 단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필생? 칼 조각을 따라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엔 ‘필승’ 이었던 글씨 위에 누군가 장난을 친 거였다. 담임은 난데없이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해바라기라고 대답하자 담임은 검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커다랗게 웃었다. 다음엔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나는 생각하느라 대답을 망설였다. 잡채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담임은 손을 내밀어 내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귀 뒤로 넘겨 주고 귓불을 살짝 잡아당겨 문질렀다 놓았다.

담임의 손끝이 닿았을 뿐인데 아픈 첫 젖멍울을 누군가 건드렸을 때처럼 나는 화들짝 놀라며 등골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담임은 말했다. 넌 귀가 참 예쁘구나. 그 말은 듣고 난 후부터 모든 사물들이 귀처럼 보였다.

브래지어 컵 사이 한가운데, 가슴과 가슴 사이에 녹두만한 점이 보였다. 못 보던 점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점을 문질러 보았다. 그건 점이 아니라 딱딱한 피딱지였다. 제법 두툼했다. 언제 생긴 상처인지 알 수 없었다. 잠버릇이 워낙 고약하니 잠을 자다가 생긴 상처에 피딱지가 앉은 것 같았다.

피딱지 주변이 근질근질했다. 잘못 건드렸다 떨어지면 귀찮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가려움을 꾹 참고 피딱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브래지어를 벗었다.

책가방에서 작은 선물상자를 꺼냈다. 누군가 몰래 넣어둔 거지만 누가 넣어 두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수 말고는 내 생일 따위를 기억할 친구는 없었다.

동수는 내 앞자리에 앉는 말없는 아이였다. 아무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어떤 색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웃을 때도 소리가 없었고 그나마 잘 웃지도 않았다. 은색 리본을 풀고 갈색 상자를 열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값싼 목걸이였다. 영국 여왕의 옆모습이 새겨진 플라스틱 펜던트를 나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상자 아래에는 작은 쪽지가 하나 접혀 있었다.

‘넌 나의 여왕이야. 생일 축하해.’

동수는 역시 유치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방을 괜히 둘러보고 나서 얼른 쪽지를 접어 상자 안에 목걸이와 함께 넣었다. 상자는 책상 서랍 깊숙이 넣었다. 내가 누군가의 여왕이라니. 무릎을 세워 팔로 끌어안아 허벅지와 가슴을 붙이고 달아오른 얼굴을 파묻었다.

 

외할머니는 마루에서 코를 나지막이 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머리맡에는 빈 소주병이 세워져 있었다. 외할머니는 언제인가부터 나와 함께 방에서 자지 않고 마루에 나와서 잤다. 아버지가 몸이 나빠진다고 방에서 주무시라고 해도 듣지 않았다. 상 위에 뒹구는 먹다 남은 생일 음식은 배설물처럼 더러워보였다. 말려 올라간 외할머니의 옷을 내려주다가 엄마가 먹고 자란 젖을 살며시 주물러 보았다. 외할머니가 정애야, 엄마 이름을 부르며 몸을 돌렸다. 엄마의 이름은 시크름한 술 냄새와 함께 마룻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뒹굴다 희미하게 사라졌다. 나는 외할머니가 왜 마루에서 잠을 자는지 알고 있다. 엄마가 몰래 왔다가 그냥 갈까봐서 그런 것이다.

슈퍼에서 우유와 시리얼을 사서 나왔다. 검푸른 하늘엔 별이 빛나는 물방울처럼 총총 맺혀 있었다. 또르르 굴러 미끄러지다가 아스라이 스러지는 별도 보였다. 발돋움을 하고 한 손을 뻗어 올려 손바닥을 폈다. 별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였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는 하늘을 보며 가끔 말하곤 했다. 별을 하나 갖고 싶다고. 어떤 별이 갖고 싶은지 묻자 어떤 별이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별은 멀리 있으니까, 별처럼 먼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 엄마는 시인 같았다. 엄마가 시인처럼 생각될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간혹 엄마는 내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혼자 피어있는 들꽃처럼 쓸쓸해 보이거나 바람에 날려 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우유와 씨리얼을 안고 있어서 발을 이용해 대문을 활짝 열어젖힐 때 야간작업을 하는 아버지의 누런 얼굴이 떠올랐다. 대문이 닫히지 않도록 돌로 단단히 받쳐두었다.

외할머니와 고모와 나는 시리얼과 우유가 놓인 상에 빙 둘러 앉았다. 시리얼을 한 사발 서둘러 말아 먹고 고모는 촬영이 있다며 외출 준비를 했다.

고모는 손 모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못 쓰는 다리 대신인 듯 고모는 아름다운 손을 타고났다. 고모는 유명한 탤런트의 손을 대신해 광고를 찍기도 했다. 그 후로 일이 더 많아졌다. 고모는 유명한 여자 탤런트의 손이 정말 못생겼더라며, 그 여자가 고모 손을 여신의 손이라고 말했다며 흥분해서 신은 공평하다고 했다.

고모의 웃는 얼굴과 아름답고 날씬한 손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고모 손을 부러워했던 엄마는 치즈처럼 부드러운 고모의 손을 끌어다 재봉틀이 남긴 흉이 많은 엄마 손 위에 겹쳐 얹으며 고양이 등을 쓰다듬듯이 쓸어내렸다. 고모는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손을 반사적으로 잡아 뺐다. 엄마가 무안하고 놀라서 고모를 바라보자 고모가 싸늘하게 말했다.

“올케는 욕심이 너무 많아.”

외출 준비를 끝낸 고모가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 외할머니와 내가 단둘이 남게 되자 외할머니의 어깨와 다리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외할머니는 아버지나 고모가 있을 때와 나와 단둘이 있을 때 행동이나 표정, 눈빛이 달랐다. 아버지나 고모와 있을 때는 브래지어를 한 가슴 같았고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무방비의 가슴 같았다. 나는 외할머니와 아버지와 고모를 연결하는 브래지어 후크 같은 존재였다.

시리얼을 뜨는 둥 마는 둥 멍한 외할머니의 늙은 눈 안에 내가 고여 있었다. 외할머니의 늙은 눈에 고인 흐릿한 내 얼굴이 엄마의 얼굴로 바뀌었다. 외할머니는 수레 손잡이에 꾸부정한 허리를 기대고 빈 박스를 줍는다며 밖으로 나갔다. 말려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피딱지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교복을 입었다.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는데 야간 일을 마친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피로가 까맣게 덖은 얼굴을 웃어 보이려 했지만 오히려 우그러지고 말았다. 엄마가 버리고 간 얼굴이었다.

“아버지, 시리얼 말아 잡수고 한숨 주무세요.”

“그래. 다들 나갔냐? 할머닌 또 수레 끌고 나가시고?”

“예.”

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들고 마당에 서서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었다. 모자가 작업복을 후려칠 때마다 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어젯밤 아무도 안 왔냐?”

아버지가 물었다.

“예.”

“대문은 밤새 열어 두었겠지?”

“예. 활짝.”

“알았다. 학교 갔다 곧장 와.”

“예.”

“미희야!”

“예?”

“혹시 엄마가 학교로 찾아오거든 꼭 말해라......내가 기다린다고.”

“예.”

대문 밖으로 나왔다. 미루나무에 빈 새둥우리가 보였다. 어떤 새가 살다간 둥우리였을까. 언젠가 새들이 둥우리를 찾아 다시 돌아와 알을 품고 살까. 아니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빈 둥우리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가 저녁밥을 지었다. 고모는 모델료가 입금되었다며 삼겹살을 사들고 왔다. 나는 입맛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처음 지어 수북이 퍼준 밥과 고모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고모는 남은 삼겹살을 썰어 넣고 내일은 카레라이스를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 설거지를 하고나서 고모가 카레라이스를 만들 수 있도록 냄비와 도마와 칼을 싱크대 아래로 내려놓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깨끗이 닦아 두었다. 이제 부엌일이 겁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자를 눌러쓰고 꾸부정한 팔자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야간 근무를 나갔다.

목욕을 하던 고모가 나를 불렀다. 목욕 타월에 비누를 칠하고 좁은 고모의 등과 어린 아이의 것처럼 작은 고모의 엉덩이를 문질렀다. 문지를 때마다 고모의 어깨와 등과 엉덩이가 실룩거렸다. 목욕을 끝내고 바퀴의자에 엉덩이를 얹고 나서 고모는 내 어깨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넌 참 따뜻해.”

고모가 아름다운 손으로 바닥을 밀며 나가자 젖은 옷을 벗고 나는 목욕을 했다. 젖가슴은 왜 이렇게 일찍 생기는 걸까.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나 생기면 좋을 텐데.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뿌연 습기가 서린 거울에 비친 가슴을 살펴보았다. 가슴 사이의 계곡에 맺혔던 피딱지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런데도 그곳은 여전히 까맸다. 거울의 습기를 지우고 보니 피딱지보다 더 커져 있었다. 피딱지가 점이 된 걸까. 집게손가락으로 피딱지가 있던 곳을 긁어 보았다.

오, 이런, 가슴에 구멍이 뚫리다니. 그것은 분명 구멍이었다. 구멍은 집게손가락의 한마디가 쑤욱 들어갈 정도로 제법 깊었다. 몸이 느끼는 통증 같은 건 없었지만 한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동이 일면서 부르르 떨렸다. 마치 엄마가 내게서 사라져버린 날 내 가슴이 두 쪽으로 쩍, 쪼개지는 것 같던 충격, 몸이 느끼는 통증보다 더한 스산하고 날카로운 아픔이 구멍에서 새파랗게 돋아 오르고 있었다. 샤워기의 물을 크게 틀어놓고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

외할머니가 욕실 문을 두드렸다. 급하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외할머니는 한참을 기다렸다며 엉덩이를 쥐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외할머니는 늙으니까 똥구멍도 힘을 못 쓴다고 염병할 똥구멍이라고 욕을 했다. 고모는 손에 크림을 듬뿍 바르고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 가슴에 패인 구멍을 만졌다. 구멍에서는 여전히 아릿아릿한 아픔이 푸른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심장이 조여들고 숨이 막혔다. 나는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양 손을 포개어 구멍위에 놓고 쓸쓸함을 깊숙이 눌러 주었다.

아버지는 아침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간 근무에 이어 주간 근무를 하는 것이다. 어떤 공사판에서 일을 할 때는 오일이나 주야간근무를 연속으로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철인처럼 반나절을 쉬고 나서 팔자걸음을 휘휘 저으며 또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겨울엔 일이 적기 때문에 일이 있을 때 부지런히 해 놓으려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고모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외할머니는 허리 통증이 심해서 박스를 주우러 나가지 못했다. 고모는 촬영이 없어서 쉰다고 했다.

내가 시리얼에 어제 아침 먹고 남은 우유를 부으려고 하자 고모가 우유를 조금만 남겨 달라고 했다. 내일 네일아트샵에 나가서 손톱모델을 해야 하는데 우유로 마사지를 한다고 했다. 외할머니의 소주 컵을 꺼내어 우유를 따랐다. 우유는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밥그릇에 우유를 붓고 시리얼을 살짝 적셔 먹었다.

외할머니와 고모는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라이터를 켜 서로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있었다. 나는 고모의 손에 들려 있는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고모는 라이터를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동수는 하루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 딱 한번 복도에서 마주쳤지만 동수는 다른 때보다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동수의 키는 더 작아 보이고 어깨도 더 좁게 느껴졌다. 나는 가끔씩 앞자리에 앉은 동수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흥, 머저리.

저녁밥을 준비하느라 고모는 바퀴의자에 앉아 감자와 당근을 썰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고모 옆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 카레를 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어요.”

“암암......쯧쯧쯧.”

“죽고 싶을 땐 내 손을 쳐다봤어요. 어쩌다가 이 고운 손이 내 몸에 붙었을까, 볼수록 신기하더라고요. 남의 걸 잘못 갖고 태어난 것도 같고.”

“이이......그려그려.”

“어떻게 태어났든 살아야 하는 무슨 이유가 있긴 있겠지, 이러고 지금껏 산거예요. 손이 날 살린 거지요. 이 당근이 참 맛있게 생겼네. 눈에 좋다는데 한번 잡숴 봐요.”

“잉? 먹어보까.”

고모가 외할머니 입에 당근 조각을 넣어주었다. 외할머니가 당근을 우둑우둑 씹다가 찡그리며 손바닥에 뱉어냈다.

“아이고, 이빨이 빠졌부렀네. 이것이 마지막 어금닌디.”

“오머나, 어쩐대요?”

“전부터 흔들흔들 했던 건디 뭘.”

“괜히 당근을 드려 갖고.”

“인자 잇몸으로 살아야제. 자넨 다리 없이도 사는디. 아이고, 허리야.”

“저녁밥 먹고 나서 허리 찜질을 좀 해드릴게요.”

“아이고, 내가 그런 호강을 누릴 수가 있간디. 내가 통 고개를 들 수가 없지만도 자식이라고는 미희 에미 하나뿐인지라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나서 죽을라고......썩을 년.”

“그런 말씀 마세요. 사는 게 민망하기는 피차 마찬가지예요. 오빠는 미희하고 사돈어른이 있으면 올케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고 믿나 봐요. 나도 그래요. 올케가 밉지만 올케가 돌아오면 그 사람 소식을 알 수 있으니까요. 난 그저 먼발치서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올케가 그것마저 빼앗아갔어요.”

“아이고, 몹쓸 년이여. 참말로 민망하구먼.”

사는 게 서로 민망하다며 외할머니는 카레를 휘휘 젓고 고모는 당근을 자꾸 썰었다.

브래지어를 풀자 가슴의 구멍은 어제보다 더 깊고 커져 있었다. 집게손가락이 끝까지 쑥 들어갔다.

장 위에 올려놓은 바구니에 손을 넣자 지폐 한 장이 만져졌다. 아버지는 매일 만원씩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돈을 주머니에 넣고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큰길까지 나가면 유명 브랜드 빵집이 있지만 시장 골목 끝에 있는 팥빵집으로 갔다. 유리문에는 예전부터 빨간 페인트로‘팥빵’ 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벗겨져 흉물스러웠다.

유리문을 열자 꾸벅꾸벅 졸던 주인 할머니가 놀라며 깨어났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왔냐.”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가 팥빵을 하나 건네주었다.

“요즘은 이런 빵 안 먹지?”

나는 빵을 크게 베어 물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구나.”

큰 단팥빵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할머니는 반죽이 말라붙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늬한테도 연락 없지? 팥빵도 이젠 지겹지만 혹시 한번쯤 찾아올까 하고 못 떠나는 거지. 그놈한테 연락이 오믄 늬한테 살짝이 말해 줄게, 늬도 어매한테 연락이 오믄 말해다고. 잉?”

할머니는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쳤다. 내일 아침 먹을 빵을 사서 팥빵집을 나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팥빵을 먹고 자랐다. 할머니가 직접 삶은 단팥이 듬뿍 든 팥빵은 대접만큼 크면서 가격도 쌌다. 할머니는 빵을 다 팔지 않고 꼭 한 바구니 남겼다. 남은 빵은 시장 입구 길거리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노파들의 공짜 야참이었다.

빵집 맞은편 외할머니의 허름한 이불집에서 엄마는 재봉틀로 수를 놓았다. 재빠른 엄마의 손끝에서는 모란이 화르륵 피어나고 파랑새가 포르릉 날았으며 포도송이가 탱글탱글 열렸다. 흉터가 많은 엄마의 손은 마술사의 손 같았다.

아버지는 유리문 너머로 수를 놓는 엄마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때는 아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배달꾼 정씨 아저씨였다. 정씨 아저씨는 유리문을 통해 실뜨기를 하는 어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으며 팥빵이 든 비닐봉지를 들어올렸다. 나는 정씨 아저씨가 좋았다.

철물점 아저씨도 친절했다. 철물점 아저씨는 때때로 엄마와 나에게 자장면 같은 걸 사주기도 했다. 자장면을 비벼주는 철물점 아저씨의 턱은 언제나 깨끗했다.

배달꾼 정씨는 엄마에게 미희 엄마, 라고 불렀고 철물점 아저씨는 누님, 이라고 불렀다. 배달꾼 정씨 아저씨는 다리를 못 쓰는 여동생과 살았고 철물점 아저씨는 팥빵집 할머니와 살았다. 엄마는 정씨 아저씨와 마주치면 내 손을 바짝 잡아당기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철물점 아저씨에게는 목까지 붉게 물들이며 수줍게 웃곤 했다.

팥을 씻어 내고 솥에 삶아 식혀서 커다란 대야에 주무르던 팥빵집 할머니의 두꺼운 손,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반죽을 치대고 동글동글 말아서 단팥을 한 숟가락 떠서 밀어 넣던 기계처럼 빠른 손, 외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말라붙은 반죽이 더덕더덕한 채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따뜻한 손, 나눠주기 좋아하고 덤으로 얹어주기 좋아하던 커다란 그 손이 갈고리처럼 이불보를 움켜쥐었다. 엄마는 빵집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속눈썹은 잠자리 날개처럼 파닥거렸다. 빵집 할머니는 재단 가위를 높이 치켜들더니 도라지가 무더기로 핀 이불보를 갈기갈기 찢었다. 엄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감히 늬가 내 아들한테 꼬리를 치다니. 한 번 더 그런 소리가 내 귀에 들리면 늬랑 늬딸년이랑 늬 에미랑 이렇게 찢어버릴란께 그리 알아라.”

빵집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정씨 아저씨가 사오는 팥빵을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다. 엄마는 재봉틀을 돌리다 멈추고 죽은 듯이 엎드리곤 했다. 겨울이 지나고 엄마의 손끝에서 매화가 봉오리를 힘겹게 터트릴 무렵, 조기 한 두름을 든 배달꾼 정씨가 몸보다 큰 양복을 입고 집으로 찾아왔다. 아저씨는 돈을 모아 생선전을 냈다고 했다. 며칠 후, 엄마는 정씨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정씨 아저씨는 다섯 살 이후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가 이불집에서 조금씩 자라는 동안 큰길가에는 파리바게트와 베스킨라빈스와 청바지 뱅뱅과 대형 마트들이 비온 뒤의 죽순처럼 늘어갔다. 문화의 거리라는 멋진 팻말과 소년이 새를 타고 날아가는 청동상이 세워졌다. 나는 시장 입구에 나와 앉아 턱을 괴고 새를 탄 소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상가 중앙의 광장 한 복판에는 야외 소공연장도 생겼다.

한 길을 사이에 두고 문화의 거리와 시장은 샴쌍둥이처럼 등을 돌린 채 한쪽은 화려하게 피어나고 한쪽은 누추하게 굽어들었다. 밤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더 벌어졌다. 사람들은 팥빵대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문화의 거리를 쏘다니며 외할머니와 엄마의 이불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내가 문화의 거리에서 야외공연을 보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쇼윈도의 다리가 긴 마네킹 앞에서 서성이던 어느 날부터 시장에는 원색 글씨가 난무하는 크고 작은 현수막들이 여기 저기 내걸렸다. 생존권 보장, 횡포 근절, 결사반대, 이런 말들이 핏빛으로 출렁거렸다. 나는 현수막의 글씨들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존...횡포...결사...

엄마는 시장도 곧 큰길가처럼 바뀔 거라고 했다. 시장 사람들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시장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생선전에는 손님보다 파리가 더 많았다. 아버지는 자꾸 술을 마셨다.

철물점 아저씨는 예전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어쩌다 나를 만나면 내 눈을 깊이 쏘아보며, 많이 컸구나, 할 뿐이었다. 철물점 아저씨는 늘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철물점 아저씨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팔로 휘감고 뒤로 숨었다.

시장 사람들은 장사가 되지 않는데도 밤늦게까지 상인회 사무실에 모여 수근수근 이야기를 나누었다. 팥빵집 주인 할머니는 밤마다 팥빵을 상인회 사무실로 날랐다. 상인회 회장은 철물점 아저씨였다.

엄마가 열세 번째 생일 선물로 구두를 사주었던 날 시장 사람들이 좁은 상인회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길거리 좌판에서 나물이나 사탕을 파는 노파들도 다 모였다. 그 날의 모임은 유난히 긴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먼저 사무실을 나왔다. 새 구두를 신은 나는 뒤꿈치가 아파서 걸음을 멈추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구두가 너무 예뻐서 보는 거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을 보는 거냐고 묻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집 앞에서 이불집에 뭘 놓고 왔다며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이불집에 놓고 온 무언가를 가지러 갈 때마다 엄마는 밤늦게 돌아왔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신혼집에 보낼 이불을 마무리 하느라 늦었다고 괜히 말을 더듬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손을 끌어 잡으며 내일 아침 시장 사람들 모두 구청으로 갈 거라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레로 방바닥을 오래오래 닦았다.

아침 일찍, 아버지는 붉은 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나갔다. 학교에 가려는데 엄마가 내 손을 붙잡았다. 엄마도 구청에 가려는지 어느새 외출복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나란히 걸었다. 가끔씩 엄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화의 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을 때 엄마는 손가락을 쭉 뻗어 환한 아침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별 있다.”

“어디?”

“저기.”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엄마는 쭉 뻗은 손가락 끝을 따라 하늘을 계속 보고 있었다. 엄마는 또 시인처럼 보였다. 엄마는 내 볼과 눈썹과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쓸어내린 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도 건너지 않았다. 빨간불이 되었다가 다시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엄마는 내 볼과 눈썹과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초록불이 되자 엄마는 꽃게처럼 옆걸음으로 얼굴은 나를 향한 채 신호등을 건넜다. 들고 있는 가방이 꽤 무거운지 엄마의 오른쪽 어깨가 기울어진 게 그때야 눈에 띄었다. 빨간불이 들어오고 엄마는 잰 걸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철물점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다른 점포들도 마찬가지였다. 팥빵집에서만 팥을 삶는 김이 피어나고 있었다. 붉은 글씨의 현수막들이 출렁이는 시장 길을 따라 나는 학교에 갔다. 하루 종일 엄마의 꽃게 걸음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시장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모든 게 끝났다며 마룻바닥을 주먹으로 쳐댔다. 상인회 회장이 회원들의 보상금까지 챙겨서 배신을 했다고 했다. 잠옷 바람으로 나온 외할머니는 이제 무얼 먹고 사냐고 철철 울었다. 한참 울고 나서야 아버지가 엄마를 찾았고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왜 혼자 왔냐고 물었다. 엄마는 꽃게처럼 걸어서 어느 별로 사라져버렸다.

며칠 후 철물점 문이 열렸다. 배가 나오고 알이 작은 안경을 낀 남자는 새 주인이었다. 새 주인은 시장 현대화 사업에 맞게 안경점을 차릴 거라고 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가게의 새 주인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시장 현대화 사업 신축공사가 끝나자 시장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시장 끝에 팥빵집 할머니만 남았다.

 

조는 여학생들은 담임에게 브래지어 끈을 붙잡혔다. 졸리지 않았지만 나는 눈을 부릅떴다. 담임은 졸지도 않는 내 등을 더듬었다. 볼록한 브래지어 끈이 닿자 담임의 손이 멈칫했다. 담임은 브래지어 끈을 활시위를 당기듯 힘껏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브래지어 끈이 채찍처럼 내 등을 갈겼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브래지어 같은 건 방패가 될 수 없었다. 담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소리 없이 다가와 속삭였다. 종례 후에 상담실로 오너라. 담임의 입에서 나는 노린내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

담임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몹시 가난했었고 나만한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담임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털어 놓아도 좋다며 내 손을 끌어다 무릎에 올려놓고 만졌다. 끈적끈적한 손아귀에서 빼내려 했지만 담임은 힘이 셌다. 나는 손을 붙잡힌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담임의 더러운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구멍은 있는 모양이었다.

담임은 나를 가끔 상담실에 남게 했다. 이제는 다 외울 수 있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나만한 여동생 이야기를 하며 내 어깨를 다독이거나 팔을 쓰다듬거나 손가락으로 가슴을 쓰윽 훑기도 했다. 담임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뺨을 톡톡 치며 내 입술 끝에 묻은 뭔가를 닦아내고 나서 근엄하게 말했다. 용기를 잃지 마라. 담임의 손은 어느 새 내 허벅지를 힘주어 누르고 있었다. 나는 담임의 더러운 양말에 뚫린 구멍을 노려보았다.

가슴에 파인 구멍은 더 크고 깊어졌다. 주먹이 쑤욱 들어갈 만큼 컸다. 나는 밤마다 구멍위에 손바닥을 포개고 심폐소생술을 하듯이 꾹꾹 눌렀다. 내 가슴 구멍은 굴뚝같았다. 검고 뜨거운 연기 같은 아득함으로 가득 차곤 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외할머니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무척 예민해서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마당을 내다보았다. 나는 뒤꿈치를 들고 살살 걸어 고모 방으로 향했다. 외할머니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숨을 멈추고 서서 외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잠든 외할머니는 더 늙어 보였다.

고모는 만화책을 읽다가 잠들어 있었다. 고모의 셔츠는 수북이 쌓인 만화책 옆에 반으로 접혀 있었다. 셔츠 주머니를 뒤지자 내가 원하는 물건이 손에 들어왔다. 뒤꿈치를 들고 고모의 방을 빠져나왔다.

많은 생각을 했다. 교장이나 자모회 회장에게 알려 상담실을 덮치도록 하고 자지러지게 울면 어떨까.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은? 아버지나 고모에게 모든 걸 털어 놓는 건?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생각이 많은 날 동안 나는 달라졌다.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볼륨매직파마를 하고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 고모에게는 외할머니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다리병신이라고 고모 욕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외할머니에게는 고모가 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거짓말했다. 고모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외할머니가 소주를 마시고 수레를 끌고 나갈 때 나는 악마처럼 웃었다. 나는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날, 내 가슴 구멍 속으로 기차가 철거덕 철거덕 지나갔다.

텅 빈 교실에 앉아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주위가 어둑해지자 복도로 나왔다. 신발을 가방에 넣고 괴담에 나오는 유령처럼 걸어서 1층에 있는 교무실로 갔다. 문을 열고 북쪽 끝에 있는 담임의 책상으로 갔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교과서와 출석부와 상담일지를 꺼내 책상 한가운데 뒤죽박죽으로 쌓았다.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세워져 있는 작은 액자 속의 사진을 꺼내 올렸다. 담임과 코스모스 같은 담임의 여동생이 나를 조롱하듯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 먼저 사진에 불을 붙였다. 사진 속의 담임과 코스모스 같은 담임의 여동생은 붉은 불꽃과 검은 그을음 안으로 소멸되었다.

김치찌개를 끓이려고 꽁치 통조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잡곡을 넣어 밥을 지었다. 외할머니가 김치를 살짝 볶다가 끓이면 더 맛있다고 했다. 내가 신김치를 볶는 동안 외할머니는 마늘을 찧어 주었다.

고모는 손에 오이를 썰어 올리고 있었다. 핸드크림 광고 촬영이 있다고 했다. 미스 코리아 출신 배우의 손 대신이라고 했다. 고모는 여배우의 손에 담뱃불에 지진 자국이 있다는 비밀을 말해주었다. 고모는 이번에 모델료가 들어오면 외할머니에게 한의원에 가자고 했고 외할머니는 한사코 싫다고 했다.

꽁치 김치찌개는 좀 싱거웠다. 나는 작은 냄비에 찌개를 따로 조금 덜어 놓았다. 밥도 한 그릇 퍼 두었다. 아버지는 밤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손등에 오이를 붙인 고모는 다음엔 김치찌개에 양파와 청양고추를 꼭 썰어 넣으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허리에 수건을 칭칭 묶고 국물에 쓱쓱 비벼서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나는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꽁치 통조림을 사고 남은 돈은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아침에 먹을 식빵 사는 걸 또 잊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맺혀 있었다. 엄마는 별을 가졌을까.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자정이 다되어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들어왔다. 활짝 열린 대문을 발로 찼다. 그 바람에 모자가 벗겨졌다. 모자에 하루 종일 눌려있던 대머리는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할머니의 수레에 걸려 마당에 나뒹굴었다. 외할머니가 맨발로 달려 나가다 허리를 꺾으며 주저앉았다. 고모는 바퀴의자를 타고 서두르다 마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급하게 손을 짚는 바람에 고모의 손목이 꺾이고 손바닥이 다 까졌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찾아들고 수레를 두들겨 부수었다.

“그려. 뽀솨버리소. 탕탕 뽀솨버리소. 잘하고 있네. 자네 응어리를 탕탕 뽀솨버리소.”

외할머니는 허리를 움켜쥐고 아버지를 부추겼다.

“오빠, 그러지 마.”

고모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호호 불며 아버지를 말리려 했지만 고모에게 아버지는 너무 멀었다.

“뭣하러 찾으러 다닙니까. 뭣하러. 다시는 찾으러 나가지 말란 말입니다.”

아버지의 대머리를 상모 돌리듯이 돌리고 있었다.

“하모, 자넨 알제. 내가 어디 종우 주울랴고 나갔간디. 그 몹쓸 년 찾을까 해서......”

아버지는 수레를 들어 올려 대던지고 대머리를 상모처럼 계속 돌렸다.

프라이팬에 마가린을 녹여 식빵을 구웠다. 고모는 바퀴의자에 앉아 딸기잼을 아껴 발랐다. 외할머니는 허리를 구부리고 컵에 우유를 부었다. 마가린에 구운 딸기잼 샌드위치는 고소하지도 달달하지도 않았다. 고모는 핸드크림 광고를 취소했다. 외할머니는 수레대신 고모를 태운 휠체어에 허리를 기대고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했다.

찬 물 한 사발을 들여가려는데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의 눈은 푹 꺼져 있었다. 아버지의 푹 꺼진 눈 속에 외할머니와 고모와 내가 들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엄마가 꽉 들어차 있었다. 아버지가 내 눈을 볼 때에도 엄마가 보이겠지. 나는 구멍이 있는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어젯밤 끓인 꽁치찌개로 아침밥을 차리는 내 등에 대고 아버지는 푹 꺼진 눈을 깜박이며 밤새 아무도 안 왔는지, 대문은 열어 두었는지 물었다. 나는 아무도 안 왔고 대문은 활짝 열어 두었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손과 얼굴을 뿌득뿌득 씻고 밥상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꽁치김치찌개가 맛있다고 했다. 밥을 다 먹은 아버지는 일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모자를 눌러 쓰고 더러운 장갑을 꼈다. 나는 서둘러 봉지커피 두 개를 진하게 탔다. 아버지는 숭늉 마시듯이 커피를 훌렁 마셨다. 나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아버지, 엄마가 올까요?”

“안 올지도 모르지.”

“근데, 왜 그렇게 기다려요?”

“안 오는 거하고 기다리는 거는 별개다. 대문 활짝 열어 두어라.”

아버지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다. 대문은 활짝 열어 두었다.

학교로 가는 길 반대쪽으로 걸었다. 생각해보니 반대로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장이나 학교의 반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벽돌색 보도블록을 끝없이 걸었다. 시청을 지나고 시민회관을 지났다.

 

시민회관 운동장 앞에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치솟는 분수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분수는 시원하고 달았다. 나를 꾸중하거나 끌어내는 사람은 없었다. 내 등 뒤로 사람들은 구두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어디론가 종종 걷거나 달리거나 택시를 세우거나 버스를 탔다.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탄천으로 빠졌다. 물 위에는 어디선가 휩쓸려온 꽃잎과 나뭇잎들이 보자기처럼 펼쳐져 물결을 따라 출렁거렸다. 하늘에는 아주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느린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탄천 위로 흰 다리가 하나 있었다. 흰 다리 위에 올라서서 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루 종일 돌아 다녔다. 이정표 따위는 보지 않았다. 아무 버스나 탔다가 아무데서나 내렸다. 호숫가에 앉아 있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 드러눕기도 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때로는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걸음을 멈추고 비명소리를 찾아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거리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수레를 끄는 노인들,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꽃을 심거나 공원의 쓰레기를 집어내는 사람들, 머리에 큰 쟁반을 얹고 내달리는 아주머니들, 전투경찰과 시위자들, 책가방을 메고 있지만 학교에 가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 주인 없는 고양이와 개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 거리 한가운데에서 헤맬 때면 자동차들의 경적이 미친 듯이 울렸다. 차창 밖으로 깡통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검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수많은 십자가의 불빛이 영원한 약속처럼 빛났다. 어느새 숲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노루새끼나 풀벌레 소리 같은 가냘픈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소리나는 쪽을 따라 걸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희미한 달빛 아래 보였다. 울음소리는 숲속 어딘가에서 나고 있었다. 스치는 풀잎에 발목이 베일 때마다 가렵고 쓰라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근처에 작은 샘이라도 흐르는지 길가의 풀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제법 키가 큰 풀이 우거진 곳으로 접어들 때 풀 더미 안쪽에서 아주 작은 굴뚝새를 발견했다. 아직은 덜 자란 새끼였다. 굴뚝새 앞에 몸을 수그리고 앉았다. 내가 두려운지 굴뚝새는 까만 눈을 굴리며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다. 나를 두려워했지만 도망칠 기운이 없어 입을 벌리고 할딱이며 울었다. 두 손을 펴서 내밀었다. 굴뚝새는 날개를 푸득거리며 뒤뚱뒤뚱 몇 걸음을 걸었다. 그러다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굴뚝새는 한쪽 날개를 살짝 펼쳐 짚으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굴뚝새 앞에 손바닥을 편 채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굴뚝새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내가 들은 울음소리가 마지막 힘을 다해 어미를 찾는 신호였는지 털을 부풀리고 몸을 땅에 대고 앉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부리로 몇 번 땅을 찍고 나서 굴뚝새는 눈을 반쯤 감았다.

굴뚝새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어떤 미약한 저항도 없었다. 손 안에 든 굴뚝새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굴뚝새는 거의 눈이 감기고 있었다. 교복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더듬자 구멍 입구가 잡혔다. 굴뚝새를 가슴 구멍 안으로 가만가만 넣었다. 교복셔츠의 단추를 잠그려고 할 때 하늘에 은빛 물방울처럼 맺혀있던 별 하나가 산 너머로 긴 꼬리를 날개처럼 펴고 사라졌다. 별이 있던 자리는 어둠으로 메워졌다. 별은 빛이 아니라 우주의 구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