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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기념행사

기획전시

제목 우안 최영식의 동백꽃 展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7.03.15 조회수 958

우안 최영식의 <동백꽃> 展

 

기간 : 2017년 3월 24일(금)부터

장소 : 김유정문학촌 낭만누리 기획전시실

주최 : (사)김유정기념사업회

오프닝 : 2017년 3월 29일 오후 1시

 

 

 

 

우안 최영식의 <동백꽃> 展에 부쳐

 

노란 동백꽃, 새 희망의 메시지

 

- 문인화의 소재로는 이것이 최초이다.

이런 드러내 밝힘의 말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이 우안 최영식 화백의 그림 ‘동백꽃’으로 새로이 피어났습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 작품의 가치는 크레이티브의 실천, 그 천작의 깊이와 생각의 때깔에 비례합니다. 이제까지 우안 최영식 화백의 소나무는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며 내는 솔바람뿐만 아니라 소나무가 바람에 움직이며 스스로 내는 소리 송운(松韻)까지 들릴 만큼 독보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우안 최영식 화백이 새로이 피워낸 동백은 일찍이 시·서·화에 일치를 이룬 옛 묵객들의 묵매(墨梅) 묵죽(墨竹)의 눈에 익은 그 풍과 기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지의 발견입니다. 특히 소나무 수묵에 소리가 보였듯 이번 우안의 동백 그림 속에는 알싸하고 향깃한 꽃 냄새와 함께 소설 속 인물들의 따뜻한 이야기도 보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김유정 80주기 추모의 날에 맞춰 열리게 됨을 더욱 뜻 깊게 생각합니다.

샛노란 봄의 전령 동백꽃, 그 희망의 메시지가 우안 최영식 화백의 동백꽃 展 자리에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3월,  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상 국

 

 

 

 

산동백을 화폭에 올리다

 

牛眼 최영식

 

 우리 고장 춘천에는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꽃이 있다. 바로 노란 산동백이다.

이 산동백이 김유정의 대표적인 작품 <동백꽃>의 핵심이다. 소설 끝마무리에 나타나는 산동백이 아니었으면 그 여운이 어땠을 것인가. 그걸 알기에 유정도 작품 제목을 ‘동백꽃’으로 삼았을 터이다.

 

.......거지반 집께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들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늘려있는 굵은 바위돌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허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스리 호들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왠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알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우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백꽃> 중에서

 

다만 산동백이 널리 알려진 나무가 아니어서, 김유정 사후에 출간한 소설집 󰡔동백꽃󰡕의 표지화는 바닷가 붉은 동백꽃을 넣는 실수가 따랐다. 나는 어려서는 산동백을 개동백으로 알았다. 학명이 생강나무인 것은 훨씬 뒤에 접했다.

 

산동백은 김유정 문학을 알기 전에 삶이 힘들던 시절, 긴 겨울 추위에 뼈저릴 때 봄의 전령사로 노란 꽃이 핀 걸 보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등 같았다. 겨울을 끔찍이 싫어했으므로 더 길게 느껴졌었다. 땔나무 하러 거의 매일 산을 다녀야 하는 처지라 산동백이 꽃피기를 기다렸고 누구보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편에 속했다. 산동백 꽃 피기를 기다리는 그 간절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양지 바른 쪽 바위와 어우러진 나무에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한두 송이의 노란 꽃을 찾아내던 기쁨은 컸다. 그냥 희망이다. 봄이 온다고 무엇이 달라질 게 없음에도 추위가 물러간다는 그 하나로도 희망을 가지기 충분했다.

 

17년 전 산막골로 들어와 첫 만남이 산동백이었다. 꽃필 무렵부터 청평산거 개수공사를 시작했고, 들락거리며 건봉령에 피어나는 동백꽃을 볼 수 있었다. 군락지여서 만개를 하면 마치 노란 신기루 같았다. 산동백과는 운명적인 것이 있는 듯하다. 해마다 어김없이 피어나는 산동백은 내 심금을 건드렸다. 그림 소재로 삼고자 고심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고작 소나무 아래서 분위기를 잡는 역할로 등장시켰다. 주인공을 삼기엔 꽃모양도 나뭇가지도 평범했다. 무엇 하나 또렷하게 잡히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다.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작위는 어색함을 만들어 낸다. 오랜 기다림을 가졌다.

 

생활 속에 산동백이 자리잡기도 했다. 꽃과 새순은 채취해 차로 즐기고 잎이 손바닥만큼 퍼지면 따다가 쌈을 싸먹었다. 향이 은은하고 뒷맛이 여간 개운한 게 아니다. 잎이 떨어진 후 가지를 잘라서 우려 마시기도 한다. 혼자만 누리는 게 아니라 청평산거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그 다양한 미덕을 권한다. 선운재 사시던 김 장로님은 평생 수족이 차서 고생을 했는데 산동백나무 줄기를 우려 마시며 손발이 따뜻해졌다고 한다. 산동백 예찬자로 나도 모르게 바뀌었다. 산막골 생활이 준 변화의 하나다. 아예 삶속으로 끌어들였다.

 작년 5월 김유정문학마을이 개관하고 그중 한 곳에 천연염색방이 들어섰다. 민화방, 도자기방, 한복방 등 각각 어떻게 문학마을에 어울리는 운영을 해가느냐 하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천연염색방에서 산동백 그림을 부탁해왔다. 손수건이며 스카프, 다포, 한복 등에 다양하게 활용해보고 싶단다. 오랜 기다림이 터지듯, 이미 숙성되어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산동백이 화폭 위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해도 엄두가 안나고 풀리지 않던 소재다. 신바람이 났다. 십여 점을 넘게 그렸다. 그 중 한 점이 손수건으로 만들어지고 강원미술대전 초대전이며 뿌리전, 강원서학회전에 문인화로 발표하였다. 문인화의 정식 소재로는 최초이겠다.

 

문인화의 대표적인 소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이다. 흔히 사군자라고 지칭한다. 곡선으로 이궈진 난초로 입문해 직선으로 구성된 대나무를 공부하고 직선과 곡선이 포함된 국화를 거쳐 매화까지 마치면 문인화가의 토대가 마련된다. 문인화는 이런 수업과정이 있어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지치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사군자는 현대의 문인화가들 또한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다. 기법적인 면 뿐 아니라 거기에 담긴 정신적인 미감이 담겨 있어서다. 난초는 거름기를 싫어하고 이슬만 벗하니 청렴한 선비의 모습이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러 변함없는 지조의 상징이다. 국화는 서리가 내린 후에도 피어있어 고난을 이겨내는 자세를 높이 쳤다.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피어나 맑은 향기를 낸다. 봄을 알린다. 각자 매화는 봄, 난초는 여름, 국화는 가을, 대나무는 겨울로 춘하추동 사계절을 대표한다.

 

문인화는 격조와 아취를 중시하기에 소재로 삼기도 까다롭다. 사군자 외에도 목련과 수선화며 파초, 포도, 소나무, 모란, 장미, 등꽃, 나팔꽃, 바위, 새 등 다양하나 무엇이든 다 다루지는 않는다. 필묵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갖춰져야 해서다. 새로운 소재 발굴이 어려운 이유다. 이미 성취 해 놓은 수준을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래로 떨어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간결한 미감과 더불어 공감 할 수 있는 정신적인 가치도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풍부하게 변용시킬 수 있는가도 관건이다. 매, 죽, 송의 세한삼우도처럼 다른 소재와의 어울림도 중요하다.

 

산동백은 이 지역에선 매화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기능은 매화와 다름없다. 꽃과 가지만 있는 그 간결함도 뒤지지 않는다. 다만 나무의 선이나 꽃의 모호함이 매화와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김유정의 <동백꽃>에도 나오듯이 바위와 잘 조화되는 장점이 있다. 소나무와도 이웃한다. 산동백 늦둥이는 진달래도 친구 삼는다. 산죽과도 친숙하다. 시대가 달라지니 야성과 민중적인 요소가 충분하다. 작가가 어떻게 소화시키고 어떤 방식으로 예술성을 담느냐에 달렸다. 작업해 나가노라면 길은 열려갈 것이라 여긴다. 의욕이 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