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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 김유정신인문학상-동화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6.10.14 조회수 2032

[김유정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께끼 도깨비/김현례

 

 

 

 

 

 

 

 

 

 

 

 

 

 

 

 

 

 

 

 

 

 

 

 

 

 

 

 

 

 

 

 

 

 

꼬부랑 할머니가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에요.할머니는 유모차를 밀고 다녀요.지팡이를 짚는 것보다 편하거든요.한 손으로 유모차를 잡고 다른 손을 들어 사람들한테 인사했어요.오늘은 유난히 더 크게 손을 흔들었지요.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물었어요.

“할매,오늘 좋은 일 있나 봐요?”

할머니는 마침 잘 되었다 했어요.자랑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하나밖에 없는 손주 오는 날이잖여.그놈이 좋아하는 거 샀제.”

아주머니가 멈칫하더니 할머니 눈치를 살피며 말했어요.

“로봇을 사셨나?”

“노봇?”

“아닌갑네.사내아라 거시기 변신하는 거,그거 좋아했을 줄 알았지요.”

할머니는 유모차에 실어 놓은 케이크 상자를 가리켰어요.

“아녀,께끼여.겁나게 이쁘당께.일루 와 봐.보여줄랑께.”

“께끼?아,케이크요.”

할머니는 케이크 상자를 꺼내려 했어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할머니를 말렸어요.

“아따,안 봐도 예쁜지 다 알아요.오늘이 그날인갑네.손주랑 맛나게 드쇼잉.”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가던 길을 계속 갔어요.할머니는 아주머니 뒤통수에 대고 혼잣말했어요.

“변신하는 게 뭐다냐.”

할머니는 머쓱해졌어요.꺼내려던 케이크 상자를 괜히 스윽 닦고는 다시 유모차를 밀었지요.얼마나 갔을까 별안간 하늘이 흐려지더니 후득후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음미,께끼 젖어불겄네.”

할머니는 유모차를 끌고 커다란 나무 아래로 들어갔어요.케이크 상자가 젖을까 봐 덮을 걸 찾아 이리저리 둘러봤어요.그런데 바위 뒤쪽에 꼼지락거리는 게 보이는 거예요.가만히 보니 작은 발이었어요.주홍 털이 난 게 아주 이상했지요.가까이 가 보았어요.

“요것이 뭐다냐?”

언뜻 보면 새끼 원숭이 같았어요.손하고 발은 사람처럼 생겼는데 덩치는 고양이만 했지요.온몸에는 주홍 털이 났고 기다란 꼬리도 있었어요.할머니가 다가가자 겁이 났는지 더 웅크리고 발발 떨었어요.젖은 머리털 사이로 손톱만 한 뿔이 두 개 보였지요.할머니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손뼉을 짝 쳤어요.

“으메,도깨비고만.”

할머니 어렸을 때 도깨비를 본 적이 있거든요.그런데 이렇게 작은 주홍색 도깨비는 처음이었어요.

“비를 쫄딱 맞아부렀네잉.”

떠는 모양이 어찌나 딱하던지 할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도깨비 몸을 싹싹 닦아주었어요.그제야 도깨비는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봤어요.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하나만 있는 외눈박이 도깨비였어요.할머니는 도깨비 얼굴도 아기 세수 시키듯이 살살 닦았어요.

“뭐땀시 혼자 이러고 있냐?”

도깨비가 울먹울먹했어요.

“발이 아파서요.”

자세히 보니 한쪽 발목이 많이 부었어요.할머니는 부은 발목을 살짝 짚어 보더니 어루만졌어요.

“오메,퍼뜩 병원에 가야쓰겄따.”

금방 울 것 같았던 도깨비가 킥킥 웃었어요.

“할머니도 참,도깨비가 병원에 가는 거 봤어요?따뜻한데 누워 있으면 되는데…아파서 못 걷겠어요.”

“우짜다 그랬다냐.”

“사람 애들 웃는 소리가 하도 재밌게 들려서…뭐 하고 노나 궁금해서….”

“그러냐,그러냐.”

할머니는 도깨비가 얘기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어요.

“애들 집에 몰래 들어가다…개가 짖어서 달아나다 미끄러졌어요.”

“우짰으까….”

도깨비가 다시 시무룩해졌어요.할머니는 도깨비 발을 조몰락조몰락 주물러 주었어요.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어요.할머니는 유모차에서 케이크 상자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어요.그러고는 도깨비를 번쩍 들어 유모차에 앉혔어요.

“느그 엄니한테 데려다 줄꾸마잉.날도 싸늘한디 이러고 있다 감기 걸리겄다.”

도깨비는 어리둥절했어요.여태껏 이토록 다정하게 말을 걸어 준 사람은 처음인 데다가,유모차에도 앉게 될 줄은 몰랐어요.사람들은 자기를 보면 놀라 도망가거나 막대기를 들고 와서 잡으려 했거든요.할머니는 케이크 상자를 도깨비 앞에 놓으며 단단히 일렀어요.

“요놈 잘 잡고 있어라잉.징하게 중요한 거구마잉.”

“네?네.”

도깨비는 소중한 보물 다루듯이 상자를 잡았어요.할머니가 나서며 물었어요.

“느그 집이 어디여?”

그런데 도깨비는 머뭇대기만 할 뿐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그저 손톱을 물어뜯으며 동그란 눈만 껌벅였지요.할머니는 혀를 끌끌 찼어요.

“길도 모르냐잉?그라믄 이짝부터 가볼랑께,아는 길 나오면 말해라잉.”

그렇게 다니다 보면 도깨비가 아는 길을 찾든가,아니면 도깨비 부모가 제 새끼를 찾으러 다니다 만나지 싶었어요.한참을 가는데 도깨비가 케이크 상자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어요.

“할머니,여기에 뭐가 들었어요?냄새가 무지무지 좋아요.”

할머니는 예쁜 케이크를 생각하니 싱글벙글해졌어요.

“우리 손자 줄 께끼 아니다냐.오늘 우리 손자가 아주 먼 데서 오는 날이거든.”

“께끼요?그게 뭐예요?”

도깨비는 궁금해서 상자 틈에 눈을 바싹 가져다 댔지만,잘 보이지 않았어요.달콤한 냄새가 새어 나와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었지요.금방이라도 상자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 기세였어요.할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도깨비 앞에 와서 앉았어요.

“한번 볼라냐?”

할머니는 상자를 열어 케이크를 살그머니 꺼냈어요.알록달록 과일이 예쁘게 박힌 하얀 생크림 케이크였지요.

“와!예쁘다!”

도깨비는 케이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더니 침을 꼴깍꼴깍 삼켰어요.그러고는 혀를 날름대며 입맛을 쩝쩝 다시기까지 했지요.할머니는 케이크를 상자에 그냥 넣을 수가 없었어요.할머니는 케이크 귀퉁이를 가리켰어요.

“이쪽 끝으로 쬐깐 묵어 봐라.”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깨비는 케이크를 오른손으로 푹 찍어 날름 입으로 넣었어요.

“우와아아아!맛있다!”

도깨비 눈이 휘둥그레졌어요.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어요.생크림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케이크에 넋이 나갔어요.할머니는 도깨비가 더 먹겠다고 할까 봐 애가 탔어요.케이크를 사는데 돈을 몽땅 써 버려서 다시 살 수도 없었거든요.할머니는 얼른 케이크를 상자에 넣었지요.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다시 유모차를 밀었어요.

“언능 가자.니 엄니 걱정하겠구만.”

도깨비는 더 달라고 떼쓰지는 않았어요.그저 상자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코를 킁킁댔지요.

“꼬르르륵!”

도깨비 배 속에서 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할머니한테까지 들렸어요.

“배고프냐?”

“조금요.”

“점심도 안 먹었냐?”

“….”

“밥도 안 묵고 해 넘어가도록 놀러 댕기냐!”

할머니가 버럭 호통을 쳤어요.도깨비가 깜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자 할머니는 미안해졌어요.안 그래도 작은 도깨비가 주눅이 들어 더 오그라든 것 같았어요.도깨비 머리에 다보록하게 난 솜털을 보니 문득 손자 어렸을 때가 생각났어요.손자가 아프기 전엔 참 보동보동했거든요.

“발은 다쳤는데 집도 못 찾고 배도 고프고…우짠다냐.”

차가운 바람에 비 맞은 도깨비가 병이라도 날까 걱정스러웠어요.입이 바짝 탔지요.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어요.

“께끼 더 먹을라냐?”

도깨비가 케이크 상자를 깔짝깔짝 긁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주 조금만요.”

할머니는 유모차 밀던 걸 멈추고 케이크를 상자에서 꺼냈어요.

“먹으라잉.”

할머니는 케이크를 도깨비 앞에 놓고 뒤로 돌아앉았어요.예쁜 케이크가 망가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었거든요.

“니 맘껏 묵어.아플 땐 잘 먹으면 금방 살아나분다.우리 손자 묵을 거,한 접시만 냉겨 주믄 된다잉.”

깨비는 이게 웬 떡이냐,아니 께끼냐 싶었어요.처음에는 케이크 귀퉁이를 야금야금 먹었어요.조금만 먹고 돌려줄 생각이었거든요.그런데 부드러운 하얀 크림과 빵을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제 몸까지 다 녹아버려도 모를 기막힌 맛이었어요.입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갔지요.한번 맛본 달콤한 맛은 멈출 수가 없었어요.과일 색깔은 어쩜 이렇게 예쁘고 냄새는 향기로운지….빨간색 딸기를 먹으면 보라색 포도가 궁금했어요.또 노란색 귤도 모른 체할 수 없었지요.도깨비는 저도 모르게 과일마저 홀라당 다 먹어치웠어요어느새 뭉개진 빵과 크림만 조금 남았어요.마음 같아서는 죄다 먹고 싶었지만,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그제야 뒤로 돌아앉아 있는 할머니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어요.

“할머니,이건 손자 주세요.”

도깨비는 먹다 남은 케이크를 내밀었어요.할머니는 엉망진창이 된 케이크를 보고는 또 한 번 한숨을 푹 쉬었어요.

“실컷 묵었냐?”

도깨비는 그냥 씩 웃었지요.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쑥스러워하는 게 귀여워 할머니도 피식 웃음이 났어요.할머니가 손으로 도깨비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았어요.그러고는 손을 옷에다 문지르려고 할 때였어요.

“어,잠깐만요!”

도깨비가 할머니 주름진 손을 잡더니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싹싹 핥아 먹었어요.

“아깝잖아요.”

그러면서 혓바닥으로 제 입술도 쪽쪽 빨았지요.

“오메,그리 맛나냐?남겨 준 게 신통하구마잉.”

할머니는 도깨비가 참 기특했어요.다 먹고 싶은 걸 꾹 참았을 테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느그 집이 어디다냐? 날은 저물어가는디…니 어미가 찾으러 나올 만도 한디….”

할머니는 허리를 툭툭 치며 일어났어요.그때 도깨비가 들릴락 말락 뭐라 웅얼웅얼했어요.할머니가 도깨비 앞에 다가가 다시 물었어요.

“뭐라 했냐?께끼도 배 터지게 묵었는디 목소리는 왜 그리 기어들어 가냐?”

도깨비는 할머니 눈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말했어요.

“사실은요,전 엄마 아빠가 없어요.그리고…집 같은 것도 없어요.”

도깨비는 슬금슬금 유모차에서 내려왔어요.

“죄송해요,할머니.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사람들은 절 무서워하는데,할머니는 아는 척해주고 말도 시켜주고…그리고 얼굴도 닦아 주고 여기에 태워 주고…또,이렇게 맛있는 께끼도 주고….”

할머니는 가슴이 짜르르하며 울컥 목이 메었어요.엄마 아빠 없이 컸던 손주 생각이 나서 더 애처로웠거든요.할머니는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어요.

“이거 싹 다 먹어라.도깨비가 께끼를 그리 좋아하는 줄 몰랐구마잉.”

도깨비는 입이 함박 만해져서 케이크 상자를 덥석 잡았어요.그러다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손사래를 쳤어요.

“아니에요,전 실컷 먹었어요.손자 줘야죠.”

“아따 괜찮다.사내아이들은 께끼보다 변신하는 걸 좋아한다드만.”

“변신이요?”

도깨비의 눈이 반짝 빛났어요.도깨비가 절뚝대며 할머니 앞으로 오더니 대뜸 돌멩이로 변했어요.조금 뒤엔 나뭇잎으로 변했고요.그러더니 마지막에는 케이크로 변하는 거예요.

“음미,뭐 요로코롬 희한한 게 있다냐?”

할머니는 도깨비가 변신하는 게 놀라우면서도 웃음이 났어요.할머니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손나팔을 만들어 도깨비가 변한 케이크에 대고 말했어요.

“우리 집에 갈라냐?”

도깨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케이크에서 도깨비로 변신했어요.

“정말요?그래도 돼요?딸꾹.”

도깨비는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했어요.

“그래.가서 나랑 같이 살자.”

도깨비는 할머니 다리를 와락 안았어요.가슴이 팔딱팔딱 뛰었어요.

“세상에서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께끼보다 더 좋아요,딸꾹.”

할머니는 몸을 숙여 도깨비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어요.

“울 손자 사진 밑에가 아랫목이여,따땃할텐께 거기 눕그라잉.그래야 빨리 낫제.”

도깨비는 신이 났어요.발이 벌써 다 나은 것 같았지요.도깨비는 유모차에 낑낑대고 올라타며 말했어요.

“제가 좀 더 자라고 힘이 세지면,딸꾹,여기에 할머니 태우고 제가 밀어 드릴게요,딸꾹.”

“오메,말만 들어도 허리가 쫙쫙 펴져불겄네잉.”

할머니는 더없이 좋았어요.몇 해 전 병으로 멀리 떠난 손자가 다시 살아온 것만 같았거든요.할머니는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발걸음이 빨라졌지요.

“울 손자도 변신하는 거시긴지 뭔지 보다 도깨비를 훨씬 좋아할 끼구만,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