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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기념행사

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5 김유정신인문학상-동화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5.09.30 조회수 838

[2015 김유정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나무 피리    김나은(본명 김혜정)

 

 

 

“민준아,엄마랑 한 약속 꼭 지켜야 해!”

아직도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아요.

나는 애꿎은 교문만 발로 툭툭 차며 학교 안을 힐끔거렸어요.

“왜 꼭 같이 가야 하는 거야. 형은 뮤지컬 좋아하지도 않는데….”

혼자 중얼거리는데 운동장에서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형이 보였어요. 나는 등을 획 돌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뮤지컬 공연장은 걸어서 가기엔 멀어서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초등학생 두 명이요.”

형의 몫까지
교통카드로 지불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형은 내 눈치를 보며 멀찌감치 앉았어요.

버스가 복잡한 시내로 접어들자 나는 창밖 구경을 했어요. 아찔하게 높은
건물도 많고,멋진 자전거를 파는 가게도 많았어요. 하지만 형은 보나 마나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거예요.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졌어요. 나는 형을 한 번 힐끗 보고는 하차
버튼을 눌렀어요. 버스에서 내린 후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형이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낯선 곳에서는 나와 조금 더 가까이 걸어요.

“형 잃어버리면,나만 혼나니까 잘 따라와야 해!”

형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요.

우리 형은 말을 하지 못해요. 엄마는 형이 어렸을 때 많이 아파서 그렇게 된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형은 6학년인데 4학년인 나보다도 훨씬 작아요. 학교에서 아이들은 종종 형을 ‘벙어리 난쟁이’라고 놀렸어요.

솔직히 나는 그런 형이 조금 창피했어요.
친구들이 나를 ‘귀먹은 난쟁이 동생’이라고 놀릴까 겁도 났고요.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형을 곁에서 늘 돌봐주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꾸 형을 괴롭혀서,내가 그 녀석들과 자주 주먹질하며 싸웠어요. 결국 우리는 지금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어요. 전학을 온 후 처음엔 떨어져서 다니기만 했는데,나중에는 친구들 앞에서 서로 모르는 척하기 시작했어요.

형이 걸을 때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형이 내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목걸이에서 나는 소리예요. 불면 소리도 나는 작은 나무 피리인데,그것을 지금은 형이 걸고 다녀요. 얼마 전 학교 바자회 때 싸운 일 때문이에요.

형과 화해하라고 엄마가 이 뮤지컬도 보여주는 거예요.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화가 나요.

바자회의 주제는 ‘추억’이었어요. 추억이 있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간이었지만,형이 준 선물을 내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아빠와 피리를 불던 추억을 떠올리며 형이 정성 들여
조각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같은 반
송이가 이것을 보고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민준아,그 목걸이 정말 귀엽다. 어쩜 그렇게 피리가 작지?”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어요.

“별것 아니야,내일부터는 안 걸고 다닐 거야.”

엄마가 며칠이라도 걸고 다니라고 해서 억지로 걸고 있었거든요.

“어머,정말? 그럼 이번 바자회 때 내놓을래? 내가 사고 싶어.”

나는 얼떨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 버렸어요. 형이 마음에 걸렸지만,나에게 늘 예쁘게 웃어주는 송이의 첫 부탁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거든요. 그냥 선물로 주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왠지 쑥스러워서 말하지는 못했어요. 그 대신 바자회에 내놓으면 송이가 꼭 사기로 약속했어요.

그날 이후 나는 바자회만 손꼽아 기다렸어요. 송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잠자기 전에 상상도 해보았어요. 송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쿵쿵 뛰고,얼굴도 빨개졌어요.

드디어 바자회 날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물건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학교가 들썩였어요. 나도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과 장난치며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송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찾아왔어요.

“민준아,네 목걸이…,누가 벌써 사갔데.”

나는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볼품없는 나무피리를 사갈 사람은 송이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목걸이의 행방은 결국 모른 채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용기를 내서 송이에게 선물로 줄 걸하고 후회가 되었어요.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보니,형이 그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내가 목걸이를 판다는 것을 형도 눈치채고,송이보다 먼저 사버렸던 거예요.

“왜 형이 산 거야? 이럴 거면 선물은 왜 했어!”

나는 형에게 버럭 소리쳤어요.

그러자 형도 화가 난 듯 손가락에 힘을 주며 수화로 말했어요.

“이건 너에게 주는 하나 밖에 없는 목걸이….”

“그까짓 거,또 만들면 되잖아. 멋있지도 않은데!”

형에게 등을 돌리고,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어요.

엄마는 늘 나에게 아빠를 대신해서 형을 보살펴야 한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형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무리해서
트럭을 운전하시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위로해 주지만,너무 어릴 때여서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기억이 없으니 추억이 없고,그래서 슬픔도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안 계신 것보다,형을 보살피는 것이 나는 더욱 힘들었어요. 우리 집식구들은 왜 모두 형 때문에 희생해야 하는 건지 답답하기도 했어요. 친구의 형들은 동생을 보살펴주고,
공부도 가르쳐주고,농구나 축구도 함께 하는데…. 거꾸로 나는 형을 보살펴야 하는,형의 형이 되어야 했어요. 조금씩 형이 미워졌고,또 부끄러워졌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먼저 모른척한 사람은 내가 아닌 형이었어요. 형은 작년에 전학을 온 이후 운동장에서 나와 마주쳐도 눈을 피했어요. 처음엔 내게 화가 난 줄 알았는데,그건 아니었어요. 학교에 갈 때나 집으로 올 때,형은 내 뒤를 조용히 따라 올 뿐이었어요.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선 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어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다행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어요. 친구들이 놀리는 ‘벙어리 난쟁이’가 바로 우리 형이란 것을 계속 모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바자회 이후,형은 내 뒤를 평소보다 조금 더 떨어져 걸었어요.

“어,민준이 아니야?”

표를 사서 공연장에 들어가려는데,송이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너도 이 뮤지컬 보러 왔구나!”

송이 옆에 우리 반 도연이와 철민이도 있었어요.

“그런데 혼자 보러 온 거야?”

철민이가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어요.

“응? 응.”

슬쩍 뒤를 보니,형은 멀리 떨어져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어요. 친구들은 형을 보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보자. 어차피 자유석이니까.”

송이가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얼떨결에 공연장에 들어가 친구들 옆에 앉았어요.

커다란 무대 위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켜지고,웅장한
음악이 들리며 공연의 막이 올랐어요. 공연은 어린이가 날개를 달고 과거로,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는데 어쩐지 재미가 없었어요. 친구들은 깔깔거리고 웃었지만,나는 전혀 우습지 않았어요. 공연 보다 형이 자꾸 신경 쓰였어요. 고개를 돌려 형을 찾아보았어요. 형은 맨 뒷좌석 구석에 혼자 앉아있었어요.

공연이 끝나자 친구들과 나는 사람들에 휩싸여 공연장 밖으로 우르르 나갔어요.

“우리 다 같이 버스 타고 가면 되겠다.”

송이의 말에 나는 공연장의 출구를 힐끔거렸어요. 형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았어요.

“민준아! 뭐 해?”

송이가 갈 길을 재촉했어요. 형을 데리고 가야 했지만,아이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어요. 결국 나는 친구들과 버스를 타버렸어요.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은 공연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주인공이 달고 있던 날개 이야기,타임캡슐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어요.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형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어떻게든 집에 오겠지? 길이라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수화를 아는 사람은 찾기 힘들 텐데. 맞다,형 교통카드도 없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자,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민준아,너… 우는 거야?”

송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어요.

“그렇게 슬펐어? 나도 사실 조금 울었어.”

“으,응.”

송이가 나를 울보로 생각할 것 같아 참으려 했지만 계속 눈물이 났어요.

나는 두고 온 것이 있다고 둘러대고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어요. 그리고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어요. 형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장이 더 크게 쿵쾅쿵쾅 뛰었어요.

공연장에 도착하자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공연장의
전등은 꺼졌고,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어요.

“형,어디 간 거야,형! 형!”

나는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울기만 했어요. 그런데 잠시 후,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요. 소리가 나는 곳은 공연장 옆으로 난 작은 문이었어요. 그 앞에 누군가 있었어요. 가까이 가보니 하얀색 셔츠에 파란색 반바지를 입은,바로 우리 형이었어요.

형은 웅크리고 앉아 그 나무 피리를 불고 있었어요.

“…… 형!”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를 본 형이 벌떡 일어나 웃으며 다가왔어요.

“그 목걸이…,다시 갖고 싶어.”

형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어요.

“소리가 그렇게 예쁜지 몰랐거든…….”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내게 형이 수화로 말했어요.

“집에 가자.”

형의 손가락에는 조각칼에 베인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어요. 나는 그 작은 손을 꼭 잡았어요.

“엄마랑 한 약속 지키는 거야.”

우리는 예전처럼 나란히 걷기 시작했어요. 들키기 싫은 눈물이 자꾸 나서 하늘을 보았어요.

형이 다시 나무피리를 불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