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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5 김유정신인문학상-단편소설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5.09.30 조회수 1240

[2015 김유정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미루나무 등대          이루다

 

 

 

▲ 삽화/조영길

 

 

“엄마 도망간 거 아이다. 길을 잃은 기다.

글자를 못 읽어가 버스를 못 타고 있단 말이다.

할매가 엄마 공부 못하게 해가 이래됐단 말이다”



엄마가 사라졌다. 병원에 암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로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혼자 돌아온 아빠는 소년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할머니는 김치를 썰다가 썩을 년이라고 욕을 했다. 시뻘건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삼촌은 실종 신고를 해야 하는지 가출 신고를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했다. 나는 상자 속의 미인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었고 아빠는 바닷가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두 사람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곰인형처럼 결혼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이천만 원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글을 배우는 걸 싫어했다. 공장이든 식당이든 일을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천만 원은 고이접어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부모 총회가 있던 날이었다. 미술시간에 이름표를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책상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크고 예쁘게 만들라고 했다. 김선희, 라고 매직펜으로 크게 쓰고 꽃과 왕관을 그리고 헬로키티 스티커를 붙여 완성했다. 자주색 니트 원피스에 하얀색 스니커즈를 신은 엄마는 예뻤다.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친구 엄마들에 비해 소녀처럼 앳된 엄마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복도 창문을 통해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교실을 두리번거렸다. 빈 책상에 앉았다가 책상 주인이 오면 큰 눈을 느리게 껌벅거리며 비켜주었다. 그날 알았다. 엄마는 딸의 이름조차 읽을 줄 몰랐던 것이다. 친구들은 엄마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었다.


꿈을 꾸었다. 항공모함만큼이나 큰 버스가 세워져 있는 승강장 앞에 엄마가 서 있는 꿈이었다. 버스에 비하면 엄마는 딱정벌레나 배추흰나비 애벌레처럼 작아보였다. 엄마가 목을 길게 빼고 도착지 지명을 읽으려고 했다. 글씨는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까만 점이 점점 커지더니 지명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 마을로 오는 버스였다. 엄마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엄마 이 버스야 빨리 타,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버스 정류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었는데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엄마는 보지 못했다. 버스는 빈 채로 떠났다. 엄마는 하염없이 승강장에 서 있었다. 내가 등대였다면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새벽이었다. 베갯잇이 축축했다. 엄마가 할머니 몰래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걸 매정하게 거절한 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미웠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처럼 팔을 뻗어 할머니의 얼굴을 냅다 갈겼다. 그리고는 몸부림을 쳤던 것처럼 한쪽으로 굴러가서 눈을 꼭 감았다.

할머니가 미워서 반찬 투정을 했다. 흰 양말에 흙을 잔뜩 묻혔다.
수학시험은 빵점을 받아왔다. 할머니가 ‘사랑의 매’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사랑의 매는 사찰로 현장학습을 갔다가 내가 직접 사온 것이었다. 삼천 원을 받고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나는 울면서 할머니한테 죽어버리라고 악을 썼다. 할머니는 이천만 원 썩을 년이라고 욕을 했다.

할머니가 철 지난 두꺼운 이불을 정리하려고 장롱 문을 열었다.

“이기 무신 냄새고? 찌린내 아이가.” 할머니는 코를 킁킁거리며 장롱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넘어가며 소리쳤다.

“무신 냄새?” 할머니 몸에서는 매운 연기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안 씻어서 나는 냄새였다. 할머니는 씻는 걸 싫어했다. 목욕은 물론이고 양치와 세수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 냄새가 강해서 장롱에서 난다는 ‘찌린내’가 맡아지지 않았다. 얼굴을 장롱 깊숙이 집어넣었다.

“야가 와 이카노.”

할머니가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나는 심술이 나서 상체를 더 집어넣었다. 두 다리가 대롱대롱 들렸다.

“가시나가 와 이래 우악스럽노.”

할머니가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는 대번에 눈을 치켜떴다.

“아이고, 무서버라. 눈깔이 튀어나오겠다.”

할머니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오면 다 이를끼다.”

“썩을 년 말도 꺼내지 마라. 새끼 버린 년은 에미도 아이다. 내 언제고 이랄 줄 알았다. 아프다는 것도 말짱 거짓부렁일끼다.”

“엄마 도망간 거 아이다. 길을 잃은 기다. 글자를 못 읽어가 집에 오는 버스를 못 타고 있단 말이다. 이게 다 할매 때문이다. 할매가 엄마 공부 못하게 해가 이래됐단 말이다.”

“이놈의 가시나, 에미 부끄럽다고 학교 오지도 말라고 지랄지랄 한 게 누고?”

“그라니까 와 엄마 공부 못하게 했노?”

엄마가 사라지던 날 아침에도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다.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그대로 풀었다. “학교 가기 싫다. 엄마 때문에 맨날 친구들한테 놀림 당하고. 엄마는 와 날 낳았노?” 커다란 눈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엄마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그것이 엄마와 마지막이었다.

나는 획 돌아서 방바닥에 깔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선희는 또 와 그라노?”

즉석복권을 긁던 삼촌이 물었다. 종이를 구기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이번에도 당첨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가 장롱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아무래도 쥐새끼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울든 말든 관심도 없었다. 부아가 치밀어서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시끄럽다마.”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이기 뭐꼬? 선희 아배가 술 쳐 먹고 사온 망고라는 거 아이가.”

삼촌이 다가가는 소리가 들렸다.

“썩었뿐네.”

삼촌의 목소리였다. 이불 사이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거무죽죽하게 변한 망고에서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푹 덮어썼다.

“삼베이불이 죄다 이래 되가 우야노. 이기 다 선희 짓이제?”

할머니가 이불을 젖혔다.

“아빠가 엄마 무라고 사온 기다. 할매 무라고 사온 거 아이다.”

나는 악을 쓰다가 방을 뛰쳐나왔다. 삼촌이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지만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고 그대로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미루나무 언덕에 올라갔다. 바다와 마을과 논과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파제 끝에 세워진 빨간 등대가 보였다. 방파제 길은 도로시가 옐로우 로드를 따라 에메랄드 성을 찾아갈 때 걸었던 길과 비슷했다. 몇 년 전, 발전소에서 아름다운 지역 만들기 프로젝트를 개최하면서
벽화 공모전을 열었다. 이십 개가 넘는 팀이 마을 곳곳의 빈 벽에 그림을 그렸다. 버스 정류장에는 춤추는 고래 그림이, 회색의 마을 담장에는 해산물을 한 아름 짊어진 해녀 그림,허물어져가는 폐창고의 벽에는 인어공주 캐릭터가 그려졌다. 우리 집 시멘트 담벼락에도 노란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벽화가 그려졌다. 그날의 일이 어제 저녁에 읽은 그림책처럼 눈에 선했다. 마을 부녀회에서는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위해 온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벽화를 그리는 걸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상인들은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잔칫집처럼 북적댔다. 한동안 벽화마을로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늘기도 했다. 하지만 발전소 수명 연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부터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벽화는 퇴색했고 관광객이 찾지 않으면서 마을은 파산한 테마파크처럼 을씨년스러워졌다.

꼬불꼬불 굽어진 산길을 따라 버스가 오고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대, 시내에서 오는 버스였다. 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지나쳐갔다. 나뭇가지를 들고 땅에 ‘네모마을’이라고 써 보았다. 받침도 없고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되는 쉬운 글자였다. 학부모 총회에 다녀 온 엄마는 종합장에 긴선히, 라고 내 이름을 수백 번 썼다. 나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종합장을 찢고는 바보라고 소리쳤다. 나뭇가지로 내가 쓴 글자를 지그재그로 지웠다. 흙먼지가 폴폴 날렸다. 나는 나뭇가지를 던져 버리고 미루나무 언덕을 내려왔다.


발전소를 향해 뛰어갔다. 아빠가 거기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엄마를 찾아 헤매던 아빠는 뒤늦게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빠는 실종신고를 내려고 했는데 경찰이 가출신고를 하라고 했다. 경찰은 집에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빠는 ‘발전소는 값싼 에너지를 안전하게 만드는 곳 입니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네모마을로
이사 오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일인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오전 열 시부터 시위를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를 제외한 주민들은 발전소에 이주 보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빠를 거머리 보듯 했다. 실제로 거머리 같은 새끼, 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발전소 관리자와 시청 담당자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주민들의 공격은 아빠를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와 삼촌이 시위를 말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수욕장과 맛집 때문에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마을은 유령도시처럼 비었다. 완공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신축 건물은 유치권 행사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상가마다 점포임대나 점포매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사월 햇살이 따가웠다. 나는 뒷덜미에 축축하게 배어나는 땀을 훑어 내렸다.

발전소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생수병과 캔을 집어 던지는 사람, 바닥에 앉아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삼중수소 무서워서 못 살겠다 발전소는 이주 대책 마련하라 거나 지가하락, 상권몰락 거지되는 주민들 발전소에서 책임져라, 라고 외치던 주민들이 모두 일어나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시장이 왔을 때가 꼭 이랬다. 시장은 세 시간 동안이나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빠는 허수아비처럼 눈도 깜박거리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백발인 노인이 반백인 아빠한테 소리쳤다.

“얼매나 받아 쳐 묵고 이라노.”

“……”

“우리 끼리 이라무 안 된다 아이가.”

“……”

“선희 엄마가 불쌍치도 않나?”

아빠가 대번에 발끈했다.

“선희 엄마가 와요?”

“몰라서 묻나. 선희 엄마 저거 때문에 아픈 거 아이가.”

“아프기는 누가 아프다고 그라는교? 선희 엄마는 아픈데 없꾸만. 나라에서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지, 설마 발전소 같이 큰 기업에서 거짓말 하겠는교. 여 있는 사람들 다 발전소 때문에 먹고 산거 아닌교. 고맙다고 절은 못 할망정, 물에 빠진 놈 건저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뽀지.”

“뭐라꼬? 니 말 다 했나?”


아빠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빠는 장승처럼 서서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을 그대로 받았다. 바보처럼 맞고만 있는 아빠가 미웠다. 아빠가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처럼 힘이 세져서 사람들을 모두 쓰러트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엄마가 갓 피어난 해바라기처럼 싱싱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엄마는 건강한 게 분명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던 ‘우리의원’의 의사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의사라기보다는 치매에 걸린 노인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빨리 집에 가서 삼촌을 불러와야 했다.

은아슈퍼 앞을 지날 때였다. 슈퍼에서 나오던 철민이 패거리를 맞닥트렸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뛰었다. 철민이 소리쳤다.

“야, 거기 안 서나.”

더 빨리 뛰었다. 말발굽 소리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따라붙었다. 모퉁이만 돌면 우리 집이었다. 가슴이 찌지직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달렸다. 철민이 후드티의 모자를 잡아챘다. 나는 철민이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쳤다. 애초에 철민이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보지 않아도 결과가 뻔한 일이 있다. 열 살짜리가 열세 살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일개 시민이 발전소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잡힐 걸 알면서도 도망가는 사람을 낙오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낙오자였다.

“와 도망가노? 니 내한테 죄 짓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해수욕장 앞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끌려갔다. 방치된 지 오래 된 화장실은 오물과 쓰레기로 넘쳐났다. 다들 코를 싸쥐고 욕을 했다. 철민이 수도꼭지를 틀었다. 지하수가 쏟아져 나왔다. 철민이 내 머리채를 잡고 수도꼭지에 입을 대게 했다. 지하수가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입을 앙다물어도 소용없었다. 철민이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았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물을 토해내려고 했다. 마신 양이 적어서인지 헛구역질만 날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꼬라지를 하고도 살고 싶나?”

“……”

“맨날 애들한테 맞고 놀림 당하고 와 사노. 나 같으면 자살했다.”

눈동자가 튀어나오도록 철민을 노려보았다. 할머니는 무섭다고 하고, 엄마는 슬프다고 하던 바로 그 눈이었다.

“니 엄마 도망 갔제?”

“아이다.”

“바람 나가 도망갔다고 소문 다 났는데 뭐가 아이고.”

“니 동생은 죽을 끼다.”

철민이는 사색이 되었다. 철민이 동생 철진이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철진이는 소처럼 온순한 아이였다. 나를 코시안이라고 놀리지 않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뭐라꼬?”

“철진이는 물 때문에 병에 든 게 아이다. 병들 운명이기 때문에 병이 든 기다. 그라고 가는 죽는 게 운명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세면대로 갔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학교로 간호사들이 왔다. 피를 뽑고 종이컵에 소변을 받아오라고 했다. 우리 몸이 건강한지 검사하는 거라고 했다. 며칠 후, 선생님이 검사결과를 알려주었다. 우리 몸에서 독성 물질이 나왔다고 했다. 그 물질은 자연에는 없는 것으로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생기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지하수를 먹어서도 해변에서 수영을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해변에 가자고 한 것도 수영을 하자고 한 것도 나였지만 철진이가 아프길 바란 건 아니었다. 철진이 지독한
감기몸살로 일주일이나 결석을 했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감기몸살로 입원한 철진이는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수도꼭지에서 입을 떼고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배에서 물이 출렁거렸다. 우웩, 소리가 위에서부터 식도를 따라 올라왔다. 입에서 수도꼭지처럼 물이 쏟아져 나왔다. 패거리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철민이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나를 노려보았다.



해변은 고물상 같았다. 캔과 페트병, 각종 과자봉지, 유리조각, 폐목재, 드럼통까지 있었다. 한때는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던 곳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해변을 좋아해서 여름 내내 살다시피 했다. 그때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지폐가 두둑했다. 평일에는 발전소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고, 주말에는 해변에서 맥주나 커피 등을 팔았고, 틈 날 때마다 농사를 지었다. 부모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해변이 무서운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세상을 알아 갈수록 나는 행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빠가 이주대책위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발전소에서 우리 집과 땅을 매입해 주면 당장 도시로 떠날 수 있을 텐데. 울산이나 대구, 부산 같은 큰 도시로 이사를 가면 아무도 날 놀리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라는 것, 할머니가 욕쟁이에다 죽어라고 안 씻는다는 것, 삼촌이 백수라는 걸 아무도 모를 테니까.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꺼비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책위 사람들한테 맞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삼촌을 데리러 갈 생각은 더는 들지 않았다. 사람마다 견뎌야하는 삶의 무게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그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혼자서 견뎌왔다. 어차피 어른들은 자신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을 아이들이 만드는 걸 싫어하는 족속들이었다. 우리의원의 의사만 해도 그렇다. 목이 아파요,라고 하면 요즘 감기가 유행이다, 이러면서 약을 지어주었다. 삼일 후 병원에 가서
콧물도 나와요,라고 하면 코약도 같이 넣어주마,라고 했다. 삼일 후 병원에 가서 아직도 아파요, 라고 하면 뜨거운 물을 많이 먹고 푹 쉬어라, 라고 했다. 삼일 후에 병원에 가서 조금도 낫지 않았어요, 라고 하면 감기가 그렇게 쉽게 낫니? 라며 화를 냈다. 선생님도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 뒤로 무덤의 봉분처럼 시멘트로 지어진 반구형의 지붕 여섯개가 보였다.

지붕에서… 나쁜 물질이 나온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 말을 들어주는 척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1학년 때 담임이 그랬다. 아이 같지 않은 내가 징그럽다고. 그들은 조금도 어른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어른 같지 않은데 아이가 아이답지 않다고 문제될 건 없었다.

철진이가 아프기 전 우리는 곧잘 두꺼비집을 만들고 놀았다. 내가 동그란 두꺼비집을 만들면 철진이는 조개며 돌이며 과자봉지로 두꺼비집을 예쁘게 꾸몄다. 두꺼비집 만들기가 지겨워지면 수영을 했다. 모래찜질도 재미없어지면 등대놀이를 했다. 등대인 사람이 팔을 움직이면 배인 사람이 따라 움직이는 놀이었다. 우리는 서로 등대를 하겠다고 다투었다. 등대의 신호가 엉망이 될수록 배인 사람이 우왕좌왕하다 넘어지는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두꺼비집 만들기가 시시했다. 혼자서 만들기 때문인 듯했다. 철진이,엄마,관광객들마저 사라진 해변이 한없이 쓸쓸했다. 지구에 나만 남겨진 기분이었다. 코가 매콤하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산토끼를 거꾸로 부르기 시작했다.

끼토산 야끼토 를디어 냐느가 총깡총깡 서면뛰 를디어 냐느가.

산토끼를 거꾸로 부르면 거짓말처럼 눈물이 들어간다고 말해 준 사람은 철진이었다. 괴롭히는 애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고 말해 준 사람은 엄마였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마다 엄마도 눈물을 참았던 것일까. 엄마가 돌아오면 눈물을 참는 비법을 가르쳐주리라 다짐하며 반복해서 산토끼를 거꾸로 불렀다.

“선희야,이놈의 가시나 니 거서 뭐하노. 바닷가에서 놀지 말라고 안 캤나. 빨랑 나온나.”

할머니가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할머니 뒤로 무덤의 봉분처럼 시멘트로 지어진 반구형의 지붕 여섯 개가 보였다. 지붕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을 병들게 할 수도 있는 나쁜 물질이 나온다고 했다. 아빠가 만든 지붕이었다. 지붕이 위험하다는 걸 모를 때의 일이었다. 아빠는 삼십년이 넘게 지붕을 만드는 일을 해서 삼촌을 공부 시키고 할머니를 먹여 살리고 엄마와 결혼을 했다. 할머니가 빨리 오라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뛰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해변은 텅 비어 있었다. 파도가 두꺼비 집을 한꺼번에 쓸어가 버렸다. 모래사장은 다림질이 잘 된 와이셔츠 깃처럼 펴져 있었다.

아빠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아빠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아빠는 그날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치 진통제와 함께였다. 아빠의 몸이 잘 익은 오디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할머니는 농성장에 찾아가 욕을 한바탕 퍼붓고 돌아왔다. 삼촌은 고소장을 들고 농성장을 찾아갔다. 아빠의 등골을 뽑아먹으면서 사법고시 공부를 한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형님,우리도 이주 대책위에 들어갑시다. 수명이 다 된
발전기를 재가동한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오늘 고소장 들고 대책위에 갔다가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를 만났어요. 선배 얘기 들어보니까,이 새끼들이 재가동 승인을 날치기로 했다는 거예요.”

삼촌은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서울 말씨를 쓰는 삼촌이 낯설어서 자꾸만 얼굴을 훔쳐보았다. 삼촌이 이렇게 길게 말을 한 건 고시촌에서 여행용 가방과 함께 끌려온 이후 처음이었다. 삼촌은 삼색 줄이 들어간 파랑색 추리닝을 교복처럼 입고 있었다. 아빠의 눈을 피해서 할머니한테 엄마,돈 좀 있나? 라고 말했다가 국자나 빗자루로 등짝을 얻어맞았다. 엄마가 가끔씩 아빠와 할머니의 눈을 피해 오천 원이나 만 원을 삼촌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의 삼촌과 지금의 삼촌이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양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촌은 변호사처럼 보였다. 안경다리 아래로 흰머리가 소복했다. 삼촌도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이었던 것이다.

“듣기 싫타마. 발전소는 아무 잘못 없다.”

아빠는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삼촌은 매일 아침 양복을 차려 입고 농성장으로 출근을 했다. 사법고시를 공부할 때처럼 책상에 책들이 쌓여갔다. 삼촌은 대책위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은 것 같았다. 농성장에 가보면 삼촌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열변을 토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삼촌의 입을 자판기 구멍 보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피멍이 사라졌는데도 아빠는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지냈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잘 먹지도 않았다. 그저 밤낮 없이 잠만 잤다.

아이들이 사라졌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사라지듯 그렇게 한 명씩 사라져 갔다. 발전소 사택에 살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났다. 돈이 있는 집은 가족이 전부 이사를 갔고,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아이들만 떠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한글카드를 만들었다. 스케치북을 육등분으로 나눠서 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에는 한글을 쓴 것이었다. 노란 망고를 그리고 밑에 망고,라고 한글로 쓰고 있을 때였다. 남자애가 시비를 걸어왔다.

“깜둥이,좋은 말 할 때 필리핀 가라.”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고 아이들은 나를 깜둥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럴 때면 무식하게 흑인 본 적도 없나? 필리핀은 동남아다,라고 맞받아쳤다.

“니가 가라 필리핀.”

나는 유명한 영화의 대사를 흉내 내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화냥년 가시나야.”

얼굴이 벌게진 남자애가 멱살을 잡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새롭게 얻게 된 별명 중 하나가 화냥년이었다. 화냥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화냥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었다. 화냥을 찾아봤다. 화냥은 서방질을 하는 여자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서방질을 찾아봤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정을 통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었다. 정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엄마는 화냥년이 아니었다. 글을 읽지 못해서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불쌍한 여자일 뿐이었다.

철민이 멱살을 잡고 있는 남자애를 냅다 걷어찼다.

“누꼬?”

눈을 부라리던 남자애가 철민이를 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옆으로 비켰다. 반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아이들도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반에는 철민이와 나만 남았다. 철민이는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서 때렸다. 배를 차거나 머리채를 잡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 시켰다. 철민이 손을 대는 순간,바로 덤벼들 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내 이사 간다.”

냅다 귀싸대기를 한 대 맞을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겁에 질려서 철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죽었나? 라고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안 죽었다. 수술 엄청 잘 됐다 카더라. 이제 항암치료만 잘 받으면 우리 철진이 건강해 질끼다.”

산토끼를 거꾸로 불렀다. 눈물 한 방울이 툭,실내화에 떨어졌다.

“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우리 철진이 잘못되면 내가 니 죽일끼다. 그라니까 매일 기도해라. 우리 철진이 건강해지라고. 알겠나?”

철진이가 아픈 건 나하고는 상관없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철민이 한 톤 더 크게 말했다.

“알겠나?”

“……”

“가시나야,대답해라. 알겠나?”

“거짓말. 우리 아빠가 그랬다. 대책위에서 하는 말은 다 빨갱이들이 하는 거짓말이라고. 우리 할매는 여서 팔십년을 살았는데 멀쩡하다. 우리 아빠는 발전소에서 삼십년 넘게 일했는데 아무치도 않다. 발전소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철민이네 가족은 집과 횟집을 버리고 이사를 갔다. 집 대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횟집은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횟집 앞 수족관 속에는 알록달록한 과자봉지가 수북했다. 횟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테이블과 의자,냉장고 등이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어둠 뒤편에 철진이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철진아,작게 불러보았다. 멀리서 와?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오래 횟집 앞에 서 있었다.

미루나무 언덕에 올라갔다. 시내에서 오는 버스가 보였다.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버스를 노려보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혼자 내렸다. 버스는 빠르게 지나갔다.

엄마를 닮은 사람을 봤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옆집에 혼자 살다가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살러간 할머니였다. 옆집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모란시장으로 놀러갔다가 엄마를 닮은 여자를 봤다고 했다. 엄마를 닮은 여자는 망고를 사고 있었다. 옆집 할머니가 선희 에미야? 라고 불렀다. 엄마를 닮은 여자가 옆집 할머니를 힐끗 보더니 그냥 가벼렸다고 했다. 엄마 소식을 들은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엄마를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그날부터 미루나무 언덕에 올라와서 시내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하늘을 보고 누웠다. 강한 햇살이 눈을 찔렀다. 햇살이 눈부셔 미루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삼십 미터가 넘는 미루나무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듯 쏟아져 내렸다. 내 이름은 태양에서 따왔다고 아빠가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아빠는 모르고 있었다. 사막의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선희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멀리서,점점 가까워졌다. 삼촌의 얼굴이 어슴푸레 보였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학교는 와 안 갔노?”

이틀 전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꿈에 자꾸 엄마가 보인다.”

“엄마 마이 보고 싶구나. 엄마는 아빠가 꼭 찾아올 거니까 걱정 말고 내일부터 학교 가자. 삼촌이 데려다주게.”


양복을 입고 대책위원회를 들락거리면서 삼촌은 완전히 변했다. 예전 같으면 꿀밤을 먹이면서 돈 있냐고 물었을 것이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결석을 눈 감아 줬을 것이다. 삼촌은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마흔이 넘어서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열 살이 되기도 전에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엄마는 안 올끼다.”

“그기 무신 소리고?”

“할매가 엄마 한글 못 배우게 했다. 다시는 못 온다.”

나는 이로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삼촌은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엄마가 사라지면서 돈을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돈이 생겨서 담배를 산 것일까.

“선희야,저기 등대 보이제?”

삼촌이 옐로우 로드 끝에 있는 빨간색 등대를 가리켰다.

“등대가 뭐하는 건지 아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높은 미루나무에 등대를 만들자. 엄마가 등대를 보고 집 찾아 올끼다.”


미루나무가 크다고 해도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이 없다고 해도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루나무 등대가 보일 리 없었다. 아무래도 삼촌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종이컵하고 초하고 챙겨서 아홉시까지 나온나. 삼촌은 일 마치는 대로 올게.”

언덕을 내려가는 삼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손에는 만 원짜리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삼촌이 주는 첫 용돈이었다.

매년 여름,해수욕장이 개장하는 날이면 발전소에서 주민노래자랑을 열어주었다. 노래자랑이 있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모여들었다. 해변에는 특설무대가 세워져 있었다. 특설무대 옆으로 냉장고,세탁기,세제 등의 상품이 1등상,2등상,참가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술과 음료와 먹을거리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이벤트 회사에서 나온
사회자는 간단한 게임을 해서 분위기를 띄웠다. 해가 떨어지고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워지면 특설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노래자랑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흥에 겨운 노인들은 벌써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올해 해수욕장 개장을 포기했다. 발전소는 예년처럼 주민노래자랑을 열기로 했다. 마을 곳곳에 노래자랑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은 흉측하게 찢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휘파람 소리를 냈다. 발전소에서는 예년과 달리 상품이 아닌 상금을 내걸었다. 가수를 초청하고 악단까지 부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은아슈퍼에서 종이컵과 초를 샀다. 라이터는 주머니에 있었다. 콜라도 한 병 샀다. 삼촌이 준 만 원을 주인에게 건넸다. 주인이 육천오백 원을 거슬러 주었다. 콜라를 마시면서 해변을 향해 걸었다. 할머니는 휴지를 받겠다고 이른 저녁을 먹고 해변으로 나갔다. 발전소에서 서른 개 들이 두루마리 휴지를 한사람 당 한 개씩 주겠다고 홍보를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늦기 전에 해변으로 나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특설무대에서는 노래자랑이 한창이었다. 주민 노래자랑인데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발전소 직원들과 가족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특설무대 옆으로 두루마리 휴지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할머니를 비롯해 몇 십 명의 주민들이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대책위 사람들이 근처에 앉아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구호를 외치는 소리는 노랫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삼촌이 부랴부랴 마이크와 확성기를 구해왔다. 삼촌은 확성기에 대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노랫소리와 구호가 뒤섞이며 이상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여기 앉으라는 듯이 의자를 손으로 두드렸다. 나는 콜라를 마저 마셨다. 빈 캔을 백사장에 버리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미루나무는 불에 타서 시커먼 재만 남은 것 같았다. 태양이 있던 자리에 달이 떠 있었다. 보름달이었다. 한낮의 태양은 눈부셔서 쳐다보기도 힘든데 달은 은은한 게 참 예뻤다. 엄마도 저 달을 보고 있겠지. 달에 하고 싶은 말을 적을 수 있다면,그래서 엄마가 그 편지를 읽을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올까? 엄마는 글을 읽지 못하니까 그림으로 그려야겠다. 태양이 아닌 달에서 내 이름을 따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남았다.


종이컵에 구멍을 내고 초를 끼운 다음 불을 붙였다. 주위가 환해졌다. 종이컵을 높이 들면서 내가 등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오면 미루나무에 수백 개 아니,수만 개의 촛불을 달아서 미루나무 등대를 만들 것이다. 철진이와 철민이가 옆집 할머니가 그리고 마을을 떠난 모든 사람들이,우리 마을을 잊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달보다 환하게 등대를 밝히고 싶었다. 나는 촛불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