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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기념행사

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4 김유정신인문학상-동화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4.10.07 조회수 1451

[2014 김유정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별빛

 

정보리

 

 

“어머! 내 정신 좀 봐. 율이한테… 율이는 할머니께 쓰면 돼요. 알겠지?”

“네에.”

율이는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습니다.

“으으… 울면 안 돼. 할머니가 이런 걸로 울면 안 된댔어.”

 

“남자는 절대로 이 세 가지로 울면 안 된다잉. 무서워서 우는 것, 맞아서 우는 것, 날 때부터 없었던 것 땜시 우는 것. 이것도 못 지키면 망태 할부지가 잡아가 버려야.”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확 펴지며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율이는 물기 묻은 손을 바지 앞자락에 쓱쓱 문질러 버리고 장군처럼 씩씩하게 박자에 맞춰 걸어갔습니다.

 

교문을 지나 횡단보도의 흰 블록 7개를 콩콩 밟고, 붉은색 정사각형 타일 사이를 지그재그로 폴짝폴짝 뛰어가면 30층짜리 고급 아파트가 보입니다. 율이는 그 아파트 107동 오른쪽 골목으로 빠져 굽이굽이 성의 계단처럼 말린 경사지를 헉헉대며 올라가 128번지 ‘정순자’라 적힌 집으로 들어갑니다.

“할매, 다녀왔서라.”

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도 율이는 괜스레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들어갑니다. 귀와 배가 까만 얼룩이만 컹컹하며 짖습니다. 율이는 다리를 방정맞게 뒤집어 까 신발을 마당에 내동댕이쳐 놓고 방안으로 와다다 들어가 전기장판 안으로 몸을 쏙 넣습니다.

“나간 지 오래되었구먼. 내가 어제 그렇게 누워서 좀 쉬라 했는디.”

두 눈을 감고 몸을 새우처럼 웅크려도 어느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이불의 온기에 몸이 더 싸해지는 것 같습니다. 율이는 버적버적 기어가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냈습니다.

“할무이께 죄송한 일 가지꼬 편지쓰기. 답장 받기.”

율이는 엄마, 아빠 위에 작대기를 짝짝 긋고 할머니로 고쳐 썼습니다.

“우짜노. 할매는 글도 못 쓰는디.”

율이는 연필 꽁다리만 물어뜯으며 하얀 종이에 무얼 적을까 머리만 벅벅 긁어댔습니다.

“아, 모르겠다. 할매는 언제 오는끼고.”

율이는 발로 문을 뻥 차고 어둠이 물드는 하늘에 대고 손을 쫙 폈습니다. 할머니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작은 별이 떠오를 즈음에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아직도 엄지에 걸쳐있네.”

‘울 할매 호랑이 만나면 우짜지. 울 할매는 떡도 없는디… 호랑이가 상치를 먹던가.’

율이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마루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수영하듯 물 발질을 하며 이것저것 상상했습니다. 둥글게 뻗어나가는 발끝에 밉게 버려진 신이 뒤집혀 있었습니다.

“책 보면 누가 뭐라 카던데”

신을 아무데나 던지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 율이는 도덕책에서 본 삽화를 떠올렸습니다.

“엄만 어떻게 생겼을까. 코는 요래 올라가고, 눈은 유진이처럼 크고 예쁠지도 모른다. 화날 때는 국어 선생님처럼 생겼음 우짜노. 으… ... 싫다.”

율이는 과장되게 손사래를 치다 다시 하늘에 손바닥을 맞대 봤습니다. 네 살 때 키웠던 병아리 색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입학식 가는 길에 할머니가 사준 초콜릿을 감싼 은박지 같기도 하고, 아픈 기억 속 둥둥 떠나가 버린 노란 풍선 같기도 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이 검지와 중지사이에 콕 박혀 있었습니다.

“오메. 곧 오시겠구먼.”

율이는 얼른 맨발로 뛰어나가 뒤집어진 신발을 섬돌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놓았습니다.

 

‘탁. 타닥. 탁. 타닥.’

한 번은 느리게, 한 번은 빠르게. 율이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할머니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탁’ 내밀면 머리 위 보자기가 쏠려 ‘타닥’. 빨리 중심을 잡고 다시 ‘탁’ 하면 ‘타닥’. 율이는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하얀 윗옷에 연갈색 몸빼 바지를 입은 할머니가 서벅서벅 어둠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율이는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있는 보따리에는 찰랑거리는 빛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우뚱 거리는 것이라고요.

‘긍께 울 할매는 요래 컴컴해도 계단을 훌쩍 훌쩍 넘어 댕기는 겨. 별님도 매일 함께 데리꼬 오잖아.”

율이는 냉큼 할머니의 머리 위에 있는 짐을 양 손으로 떠받아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에구 내 새끼, 추운디 따숩게 틀고 있었냐잉?”

“응! 근데 까먹고 밥을 이불 밑에 안 넣어 놨다. 차서 괘안나?”

할머니는 장판에 손을 넣어보더니 누굴 속이냐는 듯 눈을 흘겼습니다.

“이제서야 켰꼬먼. 할매가 추운께 키고 있으라 했나 안했나?”

율이는 넉살 좋게 누런 앞니를 드러내 웃으며 괘안타 괘안타 손사래를 쳤습니다. 할머니가 내려놓은 빛 보따리로 방은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오늘 많이 팔렸나?”

“말도마라. 무신 마트에서 상치도 팔고 고구마도 팔아 버리는디, 사람들 다 글로 가드라.”

할머니는 손으로 김치를 쫙 찢어 율이의 숟가락에 척 올렸습니다.

“밥 묵고 먼저 자라잉. 할매는 병하고 폐지 쫌 주으러 갔다 올랑께.”

율이는 입에 가득 찬 밥알과 김치 조각을 튀기며 투덜댔습니다.

“아. 뭐꼬. 가지마라. 오늘 억수로 춥단다.”

“땅을 파야 백 원이라도 더 나온다잉. 니가 먹고 있는 것도 다 돈이다.”

“그럼 내랑 같이 가자.”

 

율이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형형색색으로 깜빡이며 빛나는 아파트와 차들은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율이는 저들이 물고기 같다 생각했습니다. 눈을 감지 않고 요리저리 움직이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 그 속에 아가미 없는 할머니와 율이는 변종이었습니다.

“뭐하노. 냉큼 밀어라.”

율이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리어카를 뒤에서 밀었습니다. 손잡이에 걸친 얇고 가는 할머니는 그 속에 갇힌 것 같았습니다.

“할매.”

“와.”

율이가 작은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뽀얗게 흩어졌다.

“우리 서로 미안한 거 말하기 할래?”

할머니는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금 리어카를 끌었습니다.

“니 무슨 약 잘못 묵었나. 뭔 소리가.”

“우씨. 걍 한다하면 안되나?”

“안 할끼가?”

“나부터 한다?”

묵묵부답으로 뒤 돌아보지 않는 할머니에게 씩씩대던 율이는 오르막길에 오르자 잠시 입을 닫고 리어카를 밀었습니다.

“할매.”

평길에 다다르자 율이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 상욱이랑 싸워서 할매한테 억수로 맞은 날 기억나나? 그때 할매가 내한테 상욱이 엄마앞에서 무릎 꿇고 빌라켔는데 내가 기어이 안 했잖아.“

율이의 입술이 쑥스러운 일을 고백하듯 씰룩거렸습니다. 목소리는 밤공기처럼 율이와 할머니를 나지막하게 감싸 돌았습니다.

“내 그때 상욱이 집에 첨 가봤는데 테레비에 요상한 게임기에, 우리 방만한 화장실 안에 욕조도 있드라. 한참 신나게 놀다 배가 출출하길래 상욱이가 나 델꼬 주방에 갔는데 떡이 버려져 있는 기라. 할매도 알제? 고거 할매랑 내랑 얼마나 힘들게 쪄서 동네에 돌린 건디. 내가 고거이 뭐냐 물었더니 그 새끼가 노인네 냄시 나서 못 먹는 떡이라 했다. 완전 나쁜 새끼다. 할매가 하루 죙일 쌀가루 올리고 팥 올리고... ... 그래 오래 서있어서 밤새 앓아 누웠는디… “

율이는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열기를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셔 가라 앉혔습니다. 추위에도 떨지 않던 꽁꽁 언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내 그래서 상욱일 밀치고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아 버렸다. 그라고 밖을 돌아다니다 집에 왔는데 상욱이네 엄마가 울 집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드라. 할매는 몰랐겠지만 나 문 뒤에서 다 듣고 있었다. 할매가 나 땜시 죄송하다고 막 고개를 조아리는데 난 그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 도망쳤다. 근데 막 눈에서 뜨거운 게 자꾸 흘러내리는 기라. 엄마도 없꼬, 아빠도 없꼬, 테레비도, 게임기도 없어서 운 게 아니다. 기냥… ... 이건 너무 불공평 했다. 할매는 참말로 열심히 살았는디. 뿌린 만큼 거두는게 삶이라면 할매는 진즉 금 다발이 주렁주렁 얽힌 고구마라도 캐야 되는 거 아니나. 그런디 상욱이 엄마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할매를 본께 내 속이 터질 것 같은 기라. 할매는 남편도 잃고, 뼈 빠지게 밭 매고 농사지어 모아 논 쌈짓돈도 아빠가 샅샅이 가져가버렸잖아. 집도 내 집이 아니어서 자기 것, 잃을 것 하나 없는데도 여전히 고개 숙이는 할매가 야속했어라.”

율이는 잠시 멈춰서 전봇대 밑에 놓여있는 병을 집어 리어카로 옮겨 담았습니다. 병뚜껑에 흐릿하게 비친 율이의 눈망울이 쏟아질 듯 일렁였습니다.

“근디... 그게 아니었던 거여. 집에 돌아오니 할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한테 밥을 차려줬구먼. 혼내지도 않았고 자신이 겪은 수모에 대해 어떠한 티도 내지 않았어. 그때 난 내가 틀렸단 걸 안거여. 할매한테 남아있는 건, 남한테 기꺼이 고개를 조아리면서까지 지키고자하는 건 나였던 거여. 그니깐… 나도 나쁜 놈이야. 난 할매가 상욱이 엄마한테 못쓸 짓을 당할 때 할매 옆으로 달려갔어야혀. 다른 사람이 할매를 하나씩 떠나 점점 작아져가는 할매 편에 당당히 섰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미안해. 할매.”

드르륵-드르륵- 리어카의 바퀴가 톱니끼리 맞아들어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습니다. 율이와 할머니는 서로 바라보지 않은 채 리어카의 앞과 끝으로 전해지는 존재감을 느끼며 걸어갔습니다.

 

“율아. 할매가 리어카 태워줄텡께 타봐라잉.”

“안 된다. 나 이제 무거워서 못 끈다.”

“쪼매난 게 뭐가 무겁노. 할매 아직까진 쌩쌩하데이. 어여 타봐라.”

율이는 망설이다 손끝이 빨갛게 얼어 퉁퉁 부은 손으로 가볍게 리어카를 올라탔습니다. 율이가 너무 어려 집에 혼자 두지 못했던 시절 할머니는 더위와 추위에 투덜대는 율이를 리어카 위에 앉히곤 했습니다. 그때만큼은 율이는 울음을 멈추고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의 왕국을 살피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였습니다. 달그락거리는 리어카의 마찰음은 율이에게 다그닥 거리며 달리는 말굽의 소리로 들렸고, 할머니는 자기 나라의 왕비였습니다.

끼익- 덜컹. 끼익- 덜컹.

무게감 덕인지 리어카는 좀 더 묵직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습니다.

“율아.”

“무겁지 않노? 됐다. 나 내릴란다.”

“아이다. 아이다.”

목에 단단히 매어진 손수건이 할머니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함께 흔들렸습니다. 한층 가까이에서 보이는 할머니의 축 처진 볼 옆에 검버섯이 피어올라 있었습니다.

“내가 닐 처음 봤을 때 말이다. 할미는 그때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가슴 깊이 담아 두었던 삶의 실타래가 할머니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왔습니다.

“사람 일이란 게 참 묘한 것이다잉. 세상에는 정말 인연을 점 지어 놓는 신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여. 돈에 눈이 멀어 지 애미 돈을 다 뜯어먹고 애비 상 치르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여 모자의 연을 끊은 그 놈이 그날따라 보고 싶은 기다. 연락은 되지 않고 속은 바짝바짝 타는디…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널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하는겨. 할미가 놀이동산이 뭔지 알기나 하것냐. 그냥 어떻게 찾아가서 무작정 니 애비랑 니를 찾아 다녔다. 집채만한 배가 하늘에 날아다니고 불꽃이 하늘에서 막 터지고 기다란 용 같은 것이 위로 솟구쳐 아래로 꼴아박는디 내가 울부짖는 소리는 아무도 들리지 않는 것 같더라. 그렇게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너무 지치고 내 꼬라지가 뭔가 싶어서 터덜터덜 아무데나 주저앉아 있는디 저 건너편에 한 아이가 울고 있는겨.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었는데도 니 애비를 꼭 닮았더라. 누가 사준 건지 모를 노란 풍선을 손에 꽉 쥐고 절대 놓지 않는디, 그라면 안 따라 올 거냐 하고서야 손을 놓았다.

처음에 할미는 두려웠다잉. 니 얼굴은 할미를 떠난 아들을 꼭 닮아서 니가 뭘 쪼매만 잘못해도 밉고, 꼴 보기 싫고. 때리기도 얼마나 많이 때렸냐. 근디 천사 같은 내 강아지는 항상 할미 생각만 하지 않았냐. 할미 눈치를 보느라 애미, 아비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도 않았고, 한밤중에 새어 들어 오는 빛에 눈을 떠보면 니는 해진 옷을 조용히 꿰매고 있었다. 그럴 때면 할미는 마음 한켠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너를 만나게 해준 내 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율아. 할미는 니를 통해 아들을 용서했고, 내 자신을 구원받은 기다. 긍께 할미는 니한테 너무… 억수로… 고맙고…”

한 팔로 안으면 쏙 들어 올 듯 가녀린 할머니의 어깨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렸습니다. 찬바람이 뼈대에 간신히 걸쳐진 옷 사이로 들어와 할머니의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혔습니다. 율이는 손을 뻗어 할머니의 등에 갔다 댔습니다. 삶처럼 고개 진 척추 마디가 옷 사이로 느껴졌습니다.

“할매. 나 사실 그 날 기억난다. 아빤 날 떠났지만…”

율이는 작은 손가락을 하나 펴 자신이 항상 바라봐온 별을 가리켰다.

“노란 풍선은 저래 저기 있지 않나.”

할머니는 자신의 등에 얹혀진 율이의 손을 앞으로 끌어당겨 쓰다듬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차가운 가운데 같은 피가 흐르는 두 사람의 손은 데일 듯 뜨거웠습니다. 율이를 태운 리어카 속 수십 개의 유리병이 별빛에 반사되어 동화 속 마차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