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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기념행사

김유정신인문학상

제목 2013 김유정신인문학상-단편소설 당선작
작성자 문학촌 작성일 2013.10.08 조회수 2422

[2013 김유정 신인문학상] 위대한 유산
김유정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김이수
2013년 10월 08일 (화) 김이수

아버지 말대로 베개 속에 손을 넣어 까만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속에는 통장과 도장이 있었다.

그것을 보여주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082’를 몇 번 중얼거리고는 힘이 부친 듯 눈을 감았다.



지금 내게 있어 최대 관심사는 외래환자 접수처 옆에 설치된 현금 인출기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조바심에 엉덩이를 몇 번이나 들썩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틀리면 슈퍼코믹시티는 물 건너간다. 카페는 벌써 슈퍼콤으로 후끈 달아 있다. 4박 5일간 일정도 메인화면을 장식했다. 회비는 항공권, 숙박 등 모든 경비를 포함해서 백오십 만원. ‘쟈렘’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경비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 준 통장을 들여다봤다. 정확히 백구십삼 만원.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문제는 비밀번호다.

아버지한테 통장을 받자마자, 병원 앞에 있는 은행으로 갔다. 전표와 통장을 내밀자 창구 여직원이 단말기를 가리키며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불러준 ‘082’를 눌렀다. 여직원은 비밀번호는 네 자리라며 한 자리 더 누르라고 했다. 통장 뒷면에 적어둔 숫자는 ‘082’ 뿐이므로 잠시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082’이외는 생각나지 않았다. 여직원을 쳐다보자 생글거리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미소에 힘입어 ‘1’자를 눌렀다.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당황해서 ‘0822’, ‘0823’, ‘0824’까지 눌러보았다. 역시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메시지만 되풀이해서 나왔다.

- 네 번째입니다. 마지막 한 번만 더 틀리면 본인이 신분증을 지참하고 직접 오시지 않는 이상 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직원 말투가 극히 사무적으로 변했다. 미소가 없어진 얼굴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더 있다간 경찰을 부를 것만 같았다. 얼른 통장을 받아서 은행을 빠져나왔다. 문가에 서 있던 청원경찰이 따라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괜스레 등짝이 축축해졌다. 아버지가 죽은 건 아니니까 너무 초조할 건 없다. 아직 기회는 있다. ‘회광반조’라고 했던가. 언젠가 무협지에서 읽은 용어가 생각났다. 사부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한번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 내공과 비급을 주인공한테 물려준다. 아버지도 틀림없이 죽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손에 쥔 캔 커피는 아직 따뜻하다. 가지고 병실로 들어가 봤자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썩을 놈, 그놈의 쓴 물이 뭐가 좋다고. 사오라는 밥이나 사오지’ 엄마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찍 들어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다. 답답할 뿐이지. 그건 오늘 옮긴 병실이 작아서가 아니다. 우리 식구들이 커서지. 그나저나 오늘부터 엄마하고 같이 잘 게 걱정이다. 소파를 펼치면 침대가 된다고 하지만 덩치 큰 엄마와 같이 자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우니까 일인실로 옮기자고 아버지 담당의사가 큰형에게 전화했다. 큰형은 정말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운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동의했다. 모처럼 시집간 큰누나까지 모두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병원생활에서 얻은 내 경험으로 보건대 아버지는 쉽게 죽지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병실에 있던 정씨 아저씨도 식도를 다 잘라내서 금방 죽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육 개월이 지난 지금도 옆구리에 달아 놓은 관으로 영양식을 집어넣으며 잘만 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아버지는 이제 막 정신을 놓았을 뿐이다. 의사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얘기하는 법이다.

큰형은 아버지가 죽으면 집과 고물상을 허물고 그 자리에 빌라를 올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집은 엄마가 시장에서 통닭을 튀겨가며 마련했기 때문에 엄마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세금을 적게 내려고 아버지와 공동으로 명의를 올린 게 화근이었다. 아버지 동의 없이는 집 한 귀퉁이도 허물 수 없었다. 이건 목청 큰 엄마도, 밀어붙이기 좋아하는 큰형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동네 곳곳에 있는 허름한 집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빌라가 올라갈 적마다 큰형은 애가 탔다. 고물상이 무허가이니 철거해 달라는 민원을 구청에 넣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수도검침을 다니는 이 주사가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려주는 바람에 아버지 화만 돋우었다. 그러던 차에 터진 암 진단은 애가 타던 가족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 가족들은 눈에 띄게 들떠 있었다. 빌라가 올라가면 큰형은 아예 집으로 들어와 엄마랑 같이 산다고 했다. 작은형은 2층은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고 넌지시 운을 뗐다. 누나들도 내심 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 눈앞에 있는 현금인출기 외에는 관심이 없다.

병실에 들어갔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않는다. 모두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아버지를 일인실로 옮기자 간호사가 맥박과 심전도를 측정하기 위해 전기선 몇 가닥을 아버지 몸에 부착시켰다.

ECG 120/50 90

SPO2 105/90 80

NBP 200/80

- 위는 혈압이고 아래는 산소포화도입니다. 녹색 숫자가 빨간색으로 변하면 빨리 알려주세요.

빨간색으로 변하면 아버지가 금방 죽을 것으로 이해했는지 간호사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침대 맡에 모여 앉아 끊임없이 깜박이는 녹색 숫자를 바라보며 빨간색으로 변하길 기원했다. 하지만 합죽이 얼굴로 누워있는 아버지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표정이다. 엄마는 두꺼운 성경책을 베고 소파 위에 모로 누워 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엄마 궁둥이에 몸을 기댔다. 등받이로는 훌륭하다. 자세를 잡고 형들과 누나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렸다. 어떻게 하면 저런 집중력이 나올까. 목을 쭉 뺀 채 숨도 쉬지 않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 형제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런다고 색깔이 변하는 건 아니다. 아니야, 저 정도로 집중하면 기(氣)가 발생할 수 있어. 만일 기가 발생해서 모니터에 전자적 충격을 준다면 색이 변할 수 있어. 아니야, 그전에 모니터가 터질 거야. 기는 컨트롤 하지 못하면 그대로 폭주해 버리는 성질이 있잖아. 욕망의 기가 폭주하면 누구도 멈출 수 없어. ‘아키라’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종국에는 자신마저 먹어치우지.

형들과 누나들이 모니터와 어울려 기생수로 증폭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그들의 육체와 모니터가 인체연성을 시작해 거대한 기생수로 거듭나고 있다. 여덟 개의 눈알이 박힌 이 기묘한 생물체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분출하며 폭주를 시작한다. 병실을 꽉 채운 덩어리는 창문을 깨뜨리고 밖으로 뻗어 나간다. 구석에 숨어 있는 나에게도 거대한 촉수 하나가 다가와 목을 감싼다. 그들이 나를 합체하려고 한다. 창자처럼 물컹한 덩어리가 나를 빨아들인다. 거대한 덩어리 속에 빠진 나는 숨이 막혀 허우적댄다. 안 돼, 안 돼. 필사적으로 버둥대는 손안에 커다란 덩어리가 잡힌다.

‘찰싹’ 두툼한 손바닥이 내 얼굴을 갈긴다. 엄마의 궁둥이를 잡고 허우적거리던 나는 얼른 눈을 뜨고 일어난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다. 한심하다는 저 눈빛들. 머쓱해진다. 언제 왔다 갔을까. 전광석화 같은 손놀림이다. 엄마의 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 언제나 물자루처럼 늘어져 있지만, 한번 움직이면 가히 상상을 불허할 만큼 빠르다.


   
 

형들과 누나들이 돌아가자, 엄마는 저녁이 늦었다고 투덜댔다. 휴게실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사발면에 부어주자, 햇반을 말아 큰 누나가 해 온 밑반찬으로 저녁을 거하게 먹고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물론 눕기 전에 통성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기도는 엄마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다. 언젠가 아버지 때문에 속이 상해 죽으려고 농약을 가지고 뒷산 동굴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한다. 뚜껑을 따서 앞에 놓고 있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고. 죽기 전에 모든 걸 용서해야지 하고 시작한 기도는 어느새 눈물 콧물이 쏟아지면서 대성통곡으로 변했고, 그렇게 사흘 동안 굴속에서 울고 나자 마음이 바뀌어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 뒤 기도만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나에게 간증하듯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흘 동안의 벽면 수도를 통해 나름대로 득도를 한 게 분명하다. 그때 얻은 ‘일갑자’ 정도의 내공이 엄마의 나머지 인생을 지탱해 주었고.

엄마가 아무리 거친 욕설을 해대도 누구 하나 시비 걸지 못하는 이유도 그 내공에서 뿜어 나오는 ‘포스’ 때문일 것이다. 물론 범상치 않은 엄마 외모도 한몫 했다. 모과처럼 울퉁불퉁한 엄마 얼굴에 이맛살이 잡힐라치면 덩치가 산만한 큰형도 고양이 앞에 쥐가 되었다. 거기에 일갑자 내공이 더해졌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도 자려고 엄마 옆에 누웠다. 하지만 자리가 너무 좁고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몇 번을 뒤척이다 끝내 포기하고 아버지 곁으로 갔다. 워낙 작은 양반이 입원 후에는 더 쪼그라들어 얼굴만 늙은 아이처럼 보였다. 침대는 둘이 자기에 넉넉했다. 손에 낀 심전도 줄만 건들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하긴 의사도 포기한 마당에 뭐가 문제겠는가. 나는 아버지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고 그 자리에 누웠다. 퀴퀴한 냄새가 아버지 쪽에서 솔솔 새어나온다. 등창 냄새일까. 아버지는 멀쩡할 때도 항상 냄새가 났다. 겨우내 입었던 황토색 파카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고, 여름 내내 입었던 긴소매 남방에서는 쉰내가 났다. 누런 이빨 사이로는 썩은 암모니아 냄새도 새어나왔다. 냄새를 맡고 있자니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언제나 합죽이처럼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아버지 별명은 ‘병팔이’다.

우리집과 옆집 사이에 있는 빈터에는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다. 이곳이 아버지 고물상이다. 아버지는 주어온 고물 중 빈 병만 주둥이를 뒤로 해 양쪽 담벼락에 높이 쌓아 놓았다. 각가지 음료수 병과 소주병, 맥주병 등을 크기별, 종류별로 정성스럽게 쌓아 아버지 나름의 디스플레이 해 놓았다. 그것들은 구질구질한 천막 안을 산뜻한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강렬한 태양빛이 형형색색의 유리병에 반사되어 부드러운 채광으로 변했다. 덕분에 천막 안은 은은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 천막 안에 들어서면 유리병에 반사된 햇살 때문에 경건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온 기분이랄까. 안쪽에 제멋대로 쌓여 있는 폐지 더미만 없다면 좀 더 그럴 듯하겠지만.

천막 한가운데는 양쪽 유리벽과 뒤쪽 폐지 산을 배경으로 제법 큰 텐트가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TV, CD플레이어, 라디오에 작은 냉장고까지 갖춰놓고 살고 있다. 바닥에는 내가 먼지를 털기 위해 걷지 않으면 결코 치워지는 법이 없는 국방색 모포와 침낭이 깔려 있다. 여기서 아버지는 친구들과 화투를 치거나 술판을 벌인다.

- 병팔이 있냐? 병팔아, 형님 왔다.

낡은 군용 야상이 트레이드마크인 배 상사 아저씨, 웃을 때면 씹다 버린 풍선껌 같은 잇몸이 몽땅 드러나는 엄씨 아저씨, 바지춤이 언제나 풀어져 있는 진씨 아저씨. 변변치 못한 위인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수도 검침을 다니는 이 주사 아저씨가 제일 낫다.

- 병팔아, 병 가져왔다. 안주 내 온나.

손에는 빈병이나 찌그러진 양은냄비 따위의 고물을 잔뜩 들고서 쳐들어온다. 그러면 아버지는 잽싸게 튀어나와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는 술판이 벌어진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바닥이 시커멓게 그을린 양은 냄비가 올라가고 그 안에 참치 캔과 묵은 김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술은 대개 아버지 친구들이 사온다. 빈병 사이에는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소주병이 서너 개 있기 마련이다.

빈병은 일종의 입장료였다. 아버지 친구들은 이곳에 올 때면 으레 빈병을 가져오는 게 관례가 되었다. 빈병이 없으면 소주라도 사 가지고 와서 일부러 빈병을 만들어야 했다. 소주병은 비는 족족 벽으로 올려졌다. 나도 어릴 적에는 늘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 잔심부름을 해 주고 안주로 사온 오징어나 땅콩을 얻어먹으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른들은 주로 젊었을 적 공사판을 떠돌던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그중 가장 흥미 있는 이야기는 아버지에 관한 일화다. 아버지가 화제에 오르면 어김없이 엄마도 딸려 나온다. 지금은 ‘병팔이’로 불리고 있지만 그때에는 ‘우리들의 원숭이’였다고 한다. 몸집이 작은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비계 매는 일을 했다. 외벽에 파이프를 묶어 발판이 놓일 수 있게 기둥을 세우는 일로 공사장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고 한번 없이 원숭이처럼 비계 사이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 내사 아시바를 넘나들면 넘들은 원싱이 같다고 주디가 짝 벌어졌지만 내는 오금이 저렸던 기라. 이 층이야 개안치만 삼 층만 넘어가 뿔면 달구지가 후들거리는 기라. 한 오 층이 넘어스면 목심 줄 놓았다고 봐야 제. 안전장치가 있나 뭐가 있나. 그때는 지금 모냥 아시바가 파이프가 아니라 일은 곱으로 힘들었데이. 댕강거리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제. 손만 삐끗하면 고만 골로 가겠구나 생각하면 등허리가 축축해지는 기라.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무 위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버지 모습을 상상했다. 눈이 크고 귀가 쫑긋한 아버지가 코알라처럼 나무에 찰싹 붙은 채 달랑거리는 삽화도 여러 장 그려보았다. 너무나 잘 어울렸다.

- 그 당시 니 엄만 굴다리시장 삼대 추녀 중 하나였지. 덩치는 남자 보다 컸지. 넉살은 과부보다 좋았지. 통닭집 ‘엄앵란’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니까. 우리가 입가심으로 맥주 한잔하러 가면 니 엄만 엄앵란이 보려 왔냐고 넉살 좋게 웃어댔지. 그 엄앵란이 니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 우리끼리만 가면 ‘영팔씨는요. 우리 영팔씨는요’하고 고개가 자라목처럼 쭉 나왔다니까. 나중에 늦게라도 니 아버지가 오면 통통한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와, 우리 영팔씨 먹어야 한다고 우리는 근처도 못 오게 했어.

맥주병 밑바닥만큼이나 두꺼운 돋보기를 쓴 이 주사 아저씨가 소눈깔 같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

- 하루는 엄 여사가 작심을 했나 봐. 소주와 통닭을 산처럼 쌓아놓고 우리 모두를 오라고 한 거야. 밤늦게까지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먹여놓고는 거사를 벌인 거지. 내가 술이 취해 엎드려 있는데, 어디선가 어, 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눈을 떠 보니 엄 여사가 니 아버지를 덥석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는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어. 뭔 일인가 하고 따라가서 문턱에 앉아 귀를 기울였지. 안에서는 어, 어, 하는 니 아버지 목소리만 들려오는 거야. 우린 모두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댔지. 그날 우린 밤새도록 엄 여사의 거사를 축하하며 술을 마셨지.



그렇게 아버지를 꿰찬 엄마인지라 아버지에게는 관대했다. 결혼 후 아버지가 집에 머물지 않고 공사장을 떠돌아 다녀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통닭을 튀기며 기다렸다. 대신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끌고 들어가 아이를 만들었다. 형들과 누나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엄마 덕분이다.

*

‘쉬익’

무언가가 내 귀가를 스치더니 32인치 LCD TV 바로 옆 벽면에 부딪혔다.

- 이런 오라질 놈의 새끼.

이어 뒤따라 터져 나오는 육두문자. 나는 얼른 TV를 껐다. 하필 틀자마자, 염불이 흘러나올게 뭐람. 황급히 바닥에서 검정 가죽에 금박이 박힌 찬송가를 집어 들어 어머님께 송구스럽게 바치고 얼른 병실 밖으로 도망쳤다.

- 야이, 쌍년의 새끼야. 니 아버지가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하는 마당에 마귀가 염불하는 걸 틀어 놔. 니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고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양반이 조그마한 염불 소리에 잠이 깨다니 정말 대단한 내공이다. 엄마의 심사가 잠잠해질 때까지 일층 로비에서 쉬는 게 좋을 성싶다. 잠자기 전 통성기도로 방 안을 성령으로 가득 채워놨는데, 내가 염불로 오염시켜 놨으니 다시 정화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괜히 나 때문에 아버진 그 난리 치는 기도소리를 또 들어야 한다. 목청이 큰 엄마의 무지막지한 기도 소리는 무당집 저리가라였다. 이곳이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망정이지 일반 병원 같으면 진작 쫓겨났다. 병실 바닥이나 두들기지 않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일층 로비는 한산하다. 하늘색 간병인복을 입은 사람이 장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아버지가 오늘 밤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담당의사가 회진을 돌 때 마침 큰형이 와 있었다.

- 밖에서 이야기 하시죠.

아버지 상태를 묻는 큰형을 의사는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 환자는 의식은 없지만 이야기는 다 알아듣습니다. 충격을 받으시면 좋지 않기 때문에….

의사는 상당히 진중한 사람이었다.

- 환자분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몸 안의 장기는 암 덩어리 때문에 아무런 활동도 못하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환자분께서는 용케 버티고 계십니다. 정말 강한 생명력이십니다. 물론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의사는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실까요.

형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 이미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환자분께서는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고요. 이제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력 문제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을 놓지 않는 이상 계속 버티실 것이고, 의욕의 끈을 놓는 순간 바로 운명하실 겁니다. 그 시간은 주님만이 아실 겁니다.

- 니미럴

의사와 헤어지면서 형이 중얼거린 말이다.

형으로서는 정말 ‘니미럴’이다. 하루를 못 넘길 거라 해서 왔는데 벌써 삼 일째다. 이십칠 만원이 삼일이라니 한숨이 나올 만도 했다.

- 저 인간이 저리 버티는 건 약을 많이 처먹어서 그래. 니들이 내 생일날 사다 준 스쿠알란인가하고 비타민제하고 저 인간이 다 처먹었잖아. 아마 그 약 기운으로 저리 오래 버티는 걸 거여.

엄마는 형들과 누나들이 사준 영양제와 건강식품을 제때 먹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렸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슬쩍 들고 나와 끼니처럼 챙겨 먹었다. 술을 마신 뒤에는 비타민제, 아침에 일어나서는 스쿠알렌, 큰누나가 사 온 흑마늘 엑기스도 아버지가 야금야금 마셔 버렸다. 엄마처럼 시간을 못 맞추거나 잊어버리는 법은 결코 없었다. 자신의 건강만큼은 정말로 잘 챙겼다.

언젠가 청소를 하려고 낡은 담요를 걷어내다가 그 밑에서 옻칠 된 검은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열어보니 손바닥만 한 사기 단지가 솜뭉치에 싸여 있었다. 꼼꼼히 밀봉한 단지를 열어보니 회색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화분가루라고 했다. 어디서 얻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몸에 좋은 거라면 양잿물도 마실 양반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염소처럼 건강했다. 매일 술을 마셔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내에 나가 파지를 모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니 역시 건강식품을 믿을 게 못 된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앞에 있는 현금 인출기에 자꾸 눈이 간다. 안주머니에 있는 통장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번만 더 틀리면 슈퍼코믹시티는 진짜 물 건너간다.

아버지가 혼수에 빠지기 직전, 나는 침대 옆에서 알바로 있던 만홧가게에서 가져온 ‘베르세르크’를 읽고 있었다. 만화책 중에서 너무 오래되거나 파손이 심한 책은 헐값에 고물상으로 넘겨졌다. 그중에서 몇 권 골라왔다. 몇 번이나 본 내용이지만 다시 보아도 감탄할 만했다. ‘미우라’의 내공에 존경을 표하며 만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의 입술이 갓난아이처럼 오물거리고 있었다. 얼른 만화책을 덮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귀를 가까이 댔다. 아버지 말대로 베개 속에 손을 넣어 까만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속에는 통장과 도장이 있었다. 그것을 보여주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082’를 몇 번 중얼거리고는 힘이 부친 듯 눈을 감았다. 순간 그게 비밀번호라는 걸 알고 잽싸게 통장 뒷면에 적었다. 때마침 들어 온 엄마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화장실로 가서 액수를 확인했다. 백구십 삼만원. 내가 원했던 액수였다. ‘쟈렘’으로 가기 위해 아버지에게 얘기했던 그만큼의 돈이었다. 등록금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 돈에 대해선 아버지도 책임을 느끼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버지가 아직 죽으면 안 된다.

잠시라도 좋으니 눈을 떠서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 주고 가야 한다.

내가 만화에 빠진 건 아버지 고물 때문이니까

그 정도는 해 주고 가야 한다.



내가 지방대 예술만화과 합격 통지서와 입학금 고지서를 내놓은 날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형들과 누나들은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고, 엄마는 어이없어했다. 유일하게 내 편인 아버지는 고개 한번 삐죽 내밀고는 고물상으로 가 버렸다. 우리 집에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밥벌이를 했다. 큰형은 공단에서 용접을 했고, 작은형은 대형면허를 따 덤프카를 몰았다. 큰누나도 흔히 말하는 공순이가 됐다. 작은누나는 엄마 곁에서 닭을 튀겨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법학도 경제도 아닌 만화를 그리는 전공을 내밀고 대학교에 가겠다고 나왔으니 난리가 날 만도 했다. 모두 어림없다는 표정이었다. 애초부터 결론은 나 있었다. 니가 알아서 가라는 거였다. 하긴 오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누가 대주겠는가. 나는 알아서 포기했고 대신 만홧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만화 메카인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5월 골든 위크 동안 동경에서 열리는 슈퍼코믹시티에 어떡하든 가고 싶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케부쿠로에서 ‘하가렌’원화전까지 열린다. 아무래도 ‘은혼’의 강세 때문에 ‘하가렌’은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이번 원화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이번에 ‘하가렌’을 사지 못하면 앞으로 통판을 구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아직 죽으면 안 된다. 잠시라도 좋으니 눈을 떠서 나에게 비밀번호를 알려 주고 가야 한다. 내가 만화에 빠진 건 아버지 고물 때문이니까 그 정도는 해 주고 가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식구들 구박을 피해 고물 속에서 지냈던 나는 자연스럽게 만화와 가까워졌다. 만화책에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있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커가면서 내가 찾는 만화도 따라 진화했다. 건담 시리즈에 빠져있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음침한 어른들의 이야기 속을 걷고 있었다. 자작나무 숲에서 벌이는 소년들의 축축한 사랑, 태초의 마성이 폭주하는 공포의 세계, 내면의 윤리를 해체한 인간의 잔혹사. 덫에 걸린 쥐를 물속에 집어넣으며 환호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냇가를 붉게 물들이며 초경을 하는 소녀의 삽화에도 고개를 끄덕일 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젖가슴이 삐져나온 여전사의 그림에 정액을 묻힐 줄도 알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더미 같은 고물 속에서 내 사춘기를 위로해 줄 만화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만화는 내 사춘기의 동반자였다.


   
 

*

- 아, 이 썩을 놈아, 천천히 얘기 혀 봐. 그러니까 글자를 다 썼으면 요걸 누르라는 거냐.

엄마가 두툼한 손으로 핸드폰을 조몰락거리며 답답해했다. 아니 내가 더 답답하다. 벌써 30분 동안이나 문자 입력과 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설명했다. 두꺼운 손가락으로 코딱지만 한 버튼을 누르는 것은 자판 위에서 코끼리가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한 번 누를 적마다 두세 개의 철자가 같이 입력됐다. 결국, 문자 입력을 포기하고 저장된 메시지를 꺼내서 보내는 방법으로 선회했다. 엄마가 갑자기 문자를 배우겠다고 나선 이유는 아버지 친구들 때문이다.

오전에 아버지 친구들이 몰려왔다. 손에는 공병 대신 깡통이 몇 개 들려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농담을 하거나 떠들지 않고 아버지 곁에서 눈물만 찔끔거렸다.

- 병팔아, 인나라, 이게 뭐냐. 니가 몇 살이라고 죽냐. 눈 좀 떠봐라. 형님들 왔다.

배 상사 아저씨가 울먹이며 말했지만,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훌쩍이며 비통해하던 아버지 친구들은 조금씩 모은 거라며 봉투 하나를 엄마 손에 쥐여 주고 돌아갔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엄마는 정색을 하며 나에게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 니 아버지 죽는다고 운 사람은 저 인간들이 처음이다. 핏줄이라는 것들이 돈만 걱정하지, 지 애비 죽는다는데 눈물 하나 안 보이고. 쯧쯧쯧….

엄마가 혀를 길게 찼다. 엄마는 피가 안 섞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형들과 누나들은 정말 너무했다. 아버지 죽음보다 빌라가 올라가느냐 마느냐에만 관심이 있으니. 하긴 나도 할 말은 없다. 내 관심은 온통 현금 인출기에 있었으니까.

‘공영팔씨가 돌아가셨음을 알려 드립니다.’

- 야이, 쌍년의 새끼야, 니 애비 친구들이 이렇게 쓰면 알아보겠냐. 영팔이라는 이름 안 쓴지가 언젠데. 그냥 ‘병팔이 죽었음’ 이렇게 찍어 놔라.

늘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엄마라지만 이번만큼은 짜증이 났다. 아무리 아버지가 밉다지만 마지막 가는 날까지 이렇게 무시하는 것은 정말 너무했다. 죽음 앞에서만큼은 존중해 줘야지. 그래도 부부 사이인데.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 요걸 누르고 다시 1번을 누른 다음 확인 버튼만 누르면 니 애비 친구들한테 모두 간다 이거지.

- 아버지 친구뿐 아니라 형, 누나들까지 모두 한 방에 가게 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문자 쏘세요. 그리고 마지막인데 이름이나 제대로 붙여 주세요. ‘병팔이 죽었음’ 이게 뭐예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공영팔님께서 돌아가셨음’ 이렇게 찍어 놓았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병실을 나서는데 성경책이 날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목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다행히 문이 닫힐 때까지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통장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우린 한 핏줄이다. 대학을 포기하던 날 아버진 텐트 안으로 나를 불렀다.

- 등록금이 얼마꼬. 이번만 해 주면 담부터는 니가 벌어 다닐 수 있는 게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 뭐라코. 뭔 등록금이 오백이나 한다냐. 햐, 대학교라 틀리긴 틀리구만.

아버지 얼굴은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쉽사리 놓칠 수 없었다.

- 이백 만원이면 된다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는 기면 유학 가는 긴데. 그게 우째 덜 드노.

나는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그것이 여기를 벗어나 ‘쟈렘’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 일주일만 가서 공부한다고 야. 하기사 요즘은 연수들도 많이 간다 하더만. 내년 봄이면 아직 시간이 있제. 내 우찌 해 볼 테니까. 니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만화 공부 하거래이.

힘이 쭉 빠졌다. 그것은 ‘다음에 보자’라는 말과 같았다. 평소 아버지 행동을 봐서는 다음을 기약할 분이 아니었다. 애석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위해 돈을 모았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통장을 넘겨주었다. 비밀번호도 같이 챙겨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나저나 마지막 숫자는 무얼까. 한 번만 더 틀리면 어쩔 수 없이 큰형에게 통장을 내 주어야 한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날 열렸던 가족회의에서 가장 큰 걱정은 병원비였다. 암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돈을 잡아먹는 병인지 형들과 누나들은 잘 알고 있었다. 형들과 누나들은 암에 걸려 집안을 말아먹은 친구를 하나 둘 정도는 갖고 있었다. 모두 입에 거품을 물고 그 무서움에 대해 떠들어 댔다. 그다음은 암이 수술을 받고도 완치될 수 없는 무서운 병이라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나이 먹은 사람 중에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 그냥 죽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큰형이 심각하게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간암 말기라 수술을 해 봤자 일 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의사 말을 큰형이 전하자, 큰누나와 작은누나가 훌쩍였다. 하지만 수술을 안 하면 석 달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은 그 훌쩍이는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누나들은 찔끔거렸고, 형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눈물도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여자처럼 조그마한 아버지 몸 안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커다랗다’는 게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지 혼자 가늠을 해 보았다. 아버지 뱃속에 내가 생각한 커다란 덩어리를 넣자 풍선처럼 부푼 아버지의 작은 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웃음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작은형이 뒤통수를 한 대 갈겨줬다.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몸이 허약하니 절대로 칼을 대지 말 것. 병원에 입원해 봤자 고칠 수 없다고 하니까 최대한 집에서 편하게 모실 것. 지금부터 아버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나를 뺀 사 남매가 공평하게 분담할 것. 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아버지 간병에 임할 것. 이것이 그날 결론이었다.



로비는 여전히 한산하고 조용했다. 지루해진 나는 품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총몽’ 컬러본을 꺼냈다. 만화책을 수령하기 위해 총판에 갔다가 발견했다. 통판에서 중요한 부분만 골라 컬러로 발행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줄 몰랐다. 켈리의 광전사 갑옷부터 하늘에 떠 있는 공중도시 ‘쟈렘’까지 완전히 풀 컬러다. 주문한 만화책을 받아 나오면서 슬쩍 밑에 끼워 넣었다.

첫 장에서 나오는 켈리의 검은 머리와 커다란 눈, 무엇보다 근육과 곡선이 잘 어우러진 광전사 몸체가 마음에 든다. 이드가 우주선 잔해에서 우연히 발견한 광전사 몸체는 고대 화성 전사의 갑옷이다. 켈리와 너무 잘 어울렸다. 프라모델이 나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야지. 켈리와 함께 고철 더미에 앉아 공중도시 ‘쟈렘’을 바라보는 지상도시 아이들 표정이 쓸쓸하다. 선택받은 자만이 사는 하늘 도시 ‘쟈렘’은 아이들의 유토피아였다. ‘쟈렘’에서 버린 고물을 뒤지며 사는 지상 사람들은 ‘쟈렘’으로 가는 날을 꿈꾸며 살고 있다. ‘총몽’을 본 후 나도 나의 ‘쟈렘’을 만들었다. 아버지 고물 더미가 지상도시였다면 슈퍼코믹시티는 나의 ‘쟈렘’이었다. 이번에 카페에 올린 만화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재개발로 말미암아 고물상에서 쫓겨나게 된 부부의 삶을 그린 ‘낯선 세상’은 나름 심혈을 기울여 그렸지만 조회 수가 많지 않았다. 요즘에도 그런 것을 그리고 있냐는 댓글이 더 많았다. 상상력의 한계였다. 터부의 세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물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리는 ‘쟈렘’으로 가야 한다. 매년 이만 개가 넘는 동호회가 참가하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슈퍼코믹시티야 말로 내가 꿈꾸는 ‘쟈렘’이다.

병실을 나온 지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총몽’을 안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일인실로 옮긴 지 벌써 오 일째다. 아버진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형들과 누나들은 지쳤는지 발길을 끊었다. 내 예상대로 아버지는 쉽게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광반조’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잠만 자고 있을 뿐이었다.

검정 비닐을 씌운 의자 사이를 빠져나오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부르르’ 떠는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니 액정화면 위로 메시지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확인해 보나 마나였다. 엄마가 보냈다는 건 아버지 죽음밖에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공영팔님께서 돌아가셨음’ 엄마가 보낸 문자가 화면 위에 떴다.

조그맣고 냄새나던 아버지가 죽었다. ‘공영팔님께서 돌아가셨음’ 이라는 까만 글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바탕체로 또박또박 쓰인 글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갑자기 새가 된 기분이다. 누군가 잡고 있던 날개를 놓아준 것처럼 어깻죽지가 가벼워졌다. 그래서일까. 아버지 죽음을 알리는 문자를 보고 있으면서도 전혀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생모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 그 사람은 내를 존중해 줬던 유일한 사람이었제. 모두 내를 ‘병팔이’라고 무시했지만,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내를 ‘영팔씨’라고 불렀제. 내는 그 사람과 살고 싶었던기라. 니를 낳다 죽지만 않았어도 내는 여기에 절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기라. 핏덩이인 니를 살리려니 어쩔 수 없어 그래 돌아왔지만서도 맘까지 붙일 수는 없었던 기라. 그래서 여기 나와 사는 기라. 여기 있으면 그 사람이 같이 있는 것 같아 맘이 푸근해지는 기라.’

아버지는 혼자서 ‘쟈렘’에 살고 있었다. 천막에서 사기단지와 함께 지낸 아버지는 행복했다. 죽어서도 ‘쟈렘’에서 살려고 했다. 그래서 내게 통장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옻 상자에 든 사기단지를 관 속에 넣어달라고 했다. 그때는 통장 때문에 마음이 들떠 왜 화분가루를 넣어 달라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건강을 챙겼던 것처럼 자신의 내세도 잘 챙겼다. 거기에 비해 엄마는 목소리만 컸지 손에 쥐여 주는 약조차 챙겨 먹지 못했다. 아버지 주검 앞에 홀로 있을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엄마가 운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여태껏 엄마가 우는 모습을 딱 한 번 봤다. 아저씨들 술자리에 끼여 있다가 우연히 엄마가 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그동안 풀리지 않고 있던 내 인생이라는 2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이 척척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퍼즐이 완성되자 패닉이 찾아왔다. 충동적으로 고물 더미로 뛰어 들어가 빨간 줄이 쳐진 약봉지를 찾아 입에 털어 넣었다. 엄마가 손가락을 내 목젖 깊숙이 쑤셔 넣어 뱃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게워내게 했다. 토사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자 정신이 돌아왔다. 엄마는 반쯤 까부라져 있는 나를 그 두꺼운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갈겨댔다.

‘아이, 쌍년의 새끼야. 뒈지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워 놨는데 니가 그렇게 쉽게 죽으려고 해. 그 연놈들이 내 속을 그만큼 뒤집었으면 됐지, 너까지 내 속을 뒤집어. 넌 내 새끼야. 누가 뭐래도 넌 내 새끼야. 또다시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으면 아가리를 찢어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이 쌍놈의 새끼들아.’

지금도 나를 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엄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거친 볼 위로 흘러내리던 굵은 눈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때처럼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내공이 깊은 엄마라도 이번 만큼은 참지 못할 것이다. 이십 년 한이 한꺼번에 분출된다면 일갑자 내공이라도 쉽게 억누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사기단지보다 못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울고 있겠지. 무지막지한 손바닥으로 내 등짝을 갈겨대며 아픔을 삭이던 엄마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진다. 가슴도 싸해지면서 뜨거운 덩어리가 목을 타고 넘어오려 한다. 쏟아지는 콧물을 훌쩍이며 뜨거운 덩어리를 도로 삼키기 위해 애를 썼다.



갑자기 목이 터져버렸다. 의자에서 쉬고 있던 몇 사람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춰지지 않는다. 누군가 티슈를 건네준다. 눈물을 닦으며 엄마를 보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산뜻한 아가씨들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교대하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이다.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화장품 냄새가 가득하다. 오층에서 아이를 데리고 탄 아줌마가 코를 ‘흠흠’ 거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오해를 풀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티슈로 코를 힘껏 풀었다. 아줌마가 질색하며 다음 층에서 아이를 끌고 내렸다. 그 바람에 아이가 들고 있던 음료수 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코 묻은 티슈와 빈병을 손에 들고 십층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휴지통에 빈병을 집어넣는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내가 왜 아버지 이름을 생각 못했지. 재빨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는 밑으로 내려갔다. 비상구를 향해 몸을 날려 발끝으로만 일층까지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끝이 체중을 지탱해 주지 못하는 바람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쪽 발목이 얼얼하다. 정말 아팠지만 꾹 참고 절뚝거리며 로비를 향해 걸어갔다. 외래환자 접수처 옆에 현금 인출기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비밀번호는 아버지 본명을 딴 게 분명하다. 엄마 휴대폰에 찍어놓고 그걸 생각 못하다니. 통장을 꺼내 현금 인출기에 집어넣었다.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르라는 안내문이 나오자 숨을 크게 내쉬고 아버지 이름을 생각했다. 평생 ‘병팔이’로만 불린 아버지는 누구도 본명을 기억해주지 않는 게 한이 되었다. 결혼 전에는 ‘영팔씨’라고 했던 엄마조차도 결혼 후에는 ‘병팔이’로만 불렀다. 생모만이 죽는 날까지 ‘영팔씨’라고 불러주었다. 그래서 나에게 줄 마지막 유산의 비밀번호를 자신의 본명으로 정한 게 분명했다. 나는 아버지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공영팔이’. 그래, ‘0082’가 틀림없어. 자신감이 생긴 나는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러자 찾을 금액을 입력하라는 다음 메시지가 나왔다. 너무 기뻐서 내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크게 웃고 말았다. 주위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개의치 않고 전액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막대한 유산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유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진짜 울기 위해 다리를 쩔뚝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끝>

그림=조영길